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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5권 · 제24장 · 서울 반지하에서 만난 며느리, 치매 돌봄 앞에 선 한중 가족들

기사입력 기사번호 58735

지난겨울, 서울 변두리의 한 반지하 집에서 저는 며느리 한 분과 마주 앉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손끝으로 문을 가리키던 그분의 표정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를 못 알아보신 지 한 달째예요.” 담담하게 던진 그 한마디 뒤에, 저는 이 챕터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치매는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모두의 병이라는 것을 그 집 문턱에서 다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며느리는 하루 평균 6~9시간을 시어머니 곁에서 보낸다고 했습니다. 밤이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시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하는 밤이면, 그분은 뜬눈으로 새벽을 맞습니다. 실제로 한국의 치매 가정 돌봄 시간은 중증 단계에서 사실상 24시간 긴장 상태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주돌봄자의 77%가 배우자나 자녀, 며느리라는 조사 결과를 저는 취재 노트에 적으면서, 그 숫자 하나하나가 그 반지하 집 같은 얼굴들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2025년 현재 한국의 치매 환자는 97만 명입니다. 내년이면 100만 명을 넘어서고, 2044년에는 200만 명에 이를 거라고 중앙치매센터는 내다봅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까지 합치면 298만 명 — 65세 이상 세 분 중 한 분이 인지 기능의 경계선에 서 계신 셈입니다. 환자 한 분을 돌보는 데 연간 2,072만 원, 국가 전체로는 18조 7,200억 원이 든다는 통계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 숫자가 병원비 명세서가 아니라 한 가정의 생활비 명세서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중국의 상황은 규모부터 다릅니다. 치매 환자가 이미 1,690만 명을 넘었고, 2050년에는 4,900만 명에 이를 거라는 예측 앞에서 저는 한동안 숫자를 다시 세어봐야 했습니다. 상하이 근교의 한 골목에서 만난 노부부가 떠오릅니다. 남편이 치매를 앓는 아내의 손을 잡고 골목을 몇 바퀴씩 돈다고 하셨습니다. “시설에 보내면 동네에서 불효자 소리를 들어요.” 그 한마디에는 중국 치매 환자의 80%가 시설이 아니라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이 그나마 치매안심센터와 주간보호로 숨 쉴 틈을 만드는 사이, 중국의 많은 가정은 오롯이 혼자서 그 밤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챕터를 쓰면서 자꾸 같은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두 나라의 가족들은 이렇게 닮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치매는 진단서 한 장이 나오는 순간, 배우자와 자녀, 며느리까지 최소 서너 명의 삶을 함께 흔들어 놓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간병 가족의 40%가 불안이나 우울을 호소한다는 조사를 보면서, 저는 그 감정이 통계표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마주 앉았던 며느리의 눈빛이었고, 상하이 골목 노부부의 굽은 어깨였습니다. 게다가 중국 치매 간병인 752명을 조사한 결과 공식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6.25%뿐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떠맡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은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한 뒤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에서 조기검진과 가족교실, 주간보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는 가족휴가제도 확대되어 단기보호는 11일로, 종일방문요양은 22회로 늘었습니다. 크지 않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제가 만난 가족들에게는 “며칠은 나도 나를 돌볼 수 있다”는 법적으로 보장된 숨구멍이었습니다. 중국은 2016년부터 49개 도시에서 장기요양보험을 시범 운영해왔고, 2026년 들어 3년 안에 전국으로 넓히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3억 1,000만 명이 가입했고 330만 명의 중증 대상자가 혜택을 받고 있다니, 제도의 뼈대는 이제 막 세워지는 중입니다.

저는 이 챕터를 취재하며 또 한 장면을 흘려보내지 못했습니다. 대전에서 만난 아드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안 잊으셨는데, 제가 방금 한 말은 잊으세요.” 단기기억부터 허물어지는 치매의 특성을, 그 한마디가 어떤 의학 교과서보다 정확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난 뒤 정식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은 한국에서 평균 1년 6개월이라고 합니다. 그 1년 반 동안 가족들은 “요즘 좀 이상하다”는 말을 삼키며, 병명도 없이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한국과 중국의 차이가 제도보다 정서에서 먼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제 자책이 아니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말로 바뀌고 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아직도 효(孝)라는 글자 하나가 시설 돌봄을 주저하게 만드는 무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에 가까워지는 초고령사회 문턱에 서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려줄 것은 자식 된 도리라는 말뿐일까요, 아니면 그 도리를 실제로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취재 내내 스스로에게 던지며 이 챕터를 써 내려갔습니다.

제가 이 세대를 오래 지켜보며 느끼는 건, 고령화라는 말이 너무 크고 멀게 들린다는 점입니다. 정작 그 말의 실체는 문을 가리키던 며느리의 손끝, 골목을 도는 노부부의 발걸음처럼 아주 작고 구체적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정책의 숫자와 가정의 밤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습니다.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이야말로 두 나라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라고, 저는 이번 취재를 마치며 다시 적어둡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밤마다 부모님의 방문을 살피며 잠들지 못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분께 묻고 싶습니다. 그 돌봄의 무게를 혼자 지고 계시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무게를 나눌 수 있는 손이 곁에 있는지를요. 저는 이 시리즈를 쓰며, 그 손을 찾는 일이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24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책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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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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