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아우르는 ‘한양의 수도성곽’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놓고 서울 중구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양도성 인근 주민 3,500여 명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영향평가 절차가 정비사업 지연과 재산권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중구는 이를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유네스코, 이코모스에 전달하고 문화유산 보존과 함께 주민 주거환경 개선 및 진행 중인 정비사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는 11월 5일 2차 주민설명회를 열어 이후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 [코리안투데이]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한 대학로에 시민들이 모여 문화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 © 지승주 기자 |
[코리안투데이]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일과 오래된 주거지를 새롭게 바꾸려는 주민의 권리가 한 공간에서 마주쳤다.
서울 중구를 지나는 한양도성이 그 현장이다.
서울 중구는 ‘한양의 수도성곽’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반대하는 주민 3,500여 명의 의견서와 연명부를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유네스코(UNESCO), 이코모스(ICOMOS) 등에 전달했다.
중구에 따르면 주민들은 세계유산 등재 자체의 의미보다 등재 이후 정비사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절차와 재산권 제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구는 주민 의견서를 지난 13일 서울시에 전달한 데 이어 20일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 이코모스에 전달했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올해 1월이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등 관계기관은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을 하나로 묶은 ‘한양의 수도성곽’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했다.
이 가운데 한양도성은 중구 광희문에서 다산동과 남산을 거쳐 숭례문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성곽 주변에 문화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성곽을 따라 오래된 주거지역과 재개발·정비사업 구역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보존관리 체계가 실제 주민의 주거환경 개선과 개발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중구에서는 직접적인 생활 문제로 연결된다.
주민들이 주목한 ‘세계유산영향평가’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적용될 수 있는 세계유산영향평가(HIA)다.
중구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유산 등재 시 100m 이내 구역이 완충구역으로 지정돼 건축·정비사업 등을 추진할 경우 영향평가가 의무화될 수 있다.
중구는 이 평가 절차로 인해 정비사업 일정이 추가로 지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완충구역 밖에서 진행되는 사업이라도 국가유산청이 영향평가 실시를 요청할 수 있어 주민들은 규제 영향권이 성곽 바로 주변에만 한정되지 않을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구가 현재 영향을 우려하는 사업에는 신당9·10·13구역 주택정비사업과 남산타운 리모델링을 비롯해 광희동·DDP·서소문 일대 도심 재개발사업 등이 포함돼 있다.
중구 입장에서는 시점도 민감하다.
남산 고도제한 완화 이후 장기간 정체됐던 주택 정비사업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상황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새로운 행정절차나 규제로 이어질 경우 어렵게 열린 주거환경 개선의 시간이 다시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우려다.
성벽 없는 곳까지 영향받을까…생활권으로 번진 걱정
우려는 대규모 재개발사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중구가 주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제시한 내용에는 다산동과 장충동, 신당동 등 한양도성에 인접한 일반 건축물의 신축·증축·개축 문제도 포함돼 있다.
특히 현재 지상에 성벽이 남아 있지 않은 유실구간도 주민들의 관심 대상이다.
중구는 지하 유구의 보존이나 연속유산 경계 설정 등에 따라 이러한 구간까지 검토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주민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될 경우 내 집과 우리 동네의 정비사업에 실제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문제다.
200여 명 설명회 참석…3,500여 명 서명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문의와 우려가 이어지자 중구는 지난 9월 3일 신당누리센터 대강당에서 주민 요청에 따른 ‘찾아가는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약 200명의 주민이 참석한 설명회에서는 세계유산 등재 추진 현황과 정비사업에 미칠 영향 등이 다뤄졌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정비사업 지연과 재산권 제한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고,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반대하는 의견서와 3,500여 명의 서명이 담긴 연명부를 중구에 공식 제출했다.
중구는 주민들의 뜻을 등재 추진 과정에 전달하기 위해 의견서와 연명부를 관계기관으로 보냈다.
요청의 핵심은 세계유산의 보존 필요성만 검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의 가치와 함께 주민 재산권, 주거환경 개선, 현재 진행 중인 정비사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살펴 등재를 신중하게 검토해 달라는 입장이다.
‘보존 대 개발’ 넘어 구체적인 기준이 관건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가치와 주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 가운데 어느 하나를 단순히 선택하기는 어렵다.
이번 논란 역시 ‘문화유산 보존이냐, 개발이냐’라는 이분법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주민 입장에서는 수년 동안 준비한 정비사업의 일정과 재산권이 걸려 있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한양의 수도성곽이 지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보존 체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세계유산 등재가 실제 개별 정비사업과 건축행위에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적용되는지, 그리고 보존과 주민 생활권 사이에서 어떤 조정 방안이 마련되는지다.
중구는 오는 11월 5일 신당누리센터 대강당에서 2차 주민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주민 의견서가 관계기관에 전달된 이후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추가 의견을 수렴한다. 중구는 정비사업에 미칠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과도한 규제나 불합리한 절차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계기관과 협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문화유산의 가치 보존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정비사업을 준비해 온 구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 역시 행정에서 세심하게 챙겨야 할 책무”라며 “주민들의 우려와 의견이 관계기관에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고, 사업장별 맞춤형 지원으로 도심 개발이 안정적으로 추진되도록 든든히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사안의 다음 장면은 ‘등재 찬반’ 자체보다 구체적인 영향 범위와 절차가 얼마나 명확하게 제시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는 11월 5일 두 번째 주민설명회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중구의 재개발·정비사업과 일반 건축물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떤 설명이 제시되는지가 주민들이 확인해야 할 다음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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