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저는 한 어르신이 손녀가 들이민 스마트폰 앞에서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다시 말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니?” 묻고 또 묻던 그 목소리가, 지금은 130만 명의 구독자 앞에서 거침없이 농담을 던지는 목소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여전히 마음이 일렁입니다. 오늘은 그 목소리들 — 한국의 박막례 할머니와 중국의 은발 크리에이터들 — 이 어떻게 신시대의 스타가 되었는지, 그 여정에서 제가 직접 보고 들은 장면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취재를 하며 가장 자주 마주친 문장이 있습니다. “7년 전만 해도 치매 예방용으로 시작한 채널이 이제는 130만 명의 손주를 거느린 제국이 됐다”는 대목입니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이번 장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그저 기억력을 붙잡아두려는 소박한 시도였을 뿐인데, 그것이 어느새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중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90대 할머니 ‘메이잉’이 샤오훙슈에서 백만 팔로워를 모았고, 톈진 징야 양로원의 평균 75세 어르신들이 올린 더우인 영상은 천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하루를 기록하려던 손끝의 움직임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숫자를 좀 더 들여다보면 이 흐름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중국 인터넷 네트워크 정보센터(CNNIC) 자료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중국의 60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는 1억 6,100만 명, 침투율은 52%를 넘어섰습니다. 퀘스트모바일 2025 리포트는 더우인의 실버 월간 활성 사용자를 2억 1,400만 명으로 집계했고, 그중 60세 이상 콘텐츠 창작자는 지난 2년 사이 세 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흐름도 방향은 같습니다. 2023년 12월 기준 50대 이상 유튜브 이용자는 943만 명으로 1년 만에 24% 늘었고, 2024년 조사에서는 60대의 82.6%, 70대의 93.1%가 ‘뉴스와 정보를 유튜브에서 본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이 수치들을 처음 접했을 때, 단순히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졌다’는 뜻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이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배우는 사람’에서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방식은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막례 할머니와 손녀 김유라 씨의 ‘2인조’ 협업처럼, 가족이 함께 카메라 뒤에서 촬영과 편집을 도맡는 방식이 두드러졌습니다. 밀라논나(장명숙, 69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저는 그분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꾸며진 완벽함이 아니라 꾸밈없는 품격”이라는 평가를 여러 번 마주쳤습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톈진 징야 양로원처럼 기관 단위로 계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78세의 물리학 교수가 더우인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설명하는 영상으로 화제가 되고, 70세 모델이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오르는 장면까지 — 신화통신이 ‘실버 인플루언서가 Z세대의 마음을 얻다’는 제목으로 다룬 그 현장을, 저는 자료 화면으로 몇 번이고 돌려 보았습니다.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젊은 세대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상에 이토록 마음을 여는 것일까요. 저는 그 답이 ‘감정의 공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1인 가구 청년들이 고향집 부모를 만나는 것은 춘절 한 번뿐이고, 서울의 2030 세대 역시 조부모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고 말합니다. 은발 크리에이터들이 담아내는 장독대, 된장국 냄새, 직설적인 잔소리는 그저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의 시간을 다시 채우는 대리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박막례 할머니 채널의 댓글창에 “우리 할머니 생각나서 울었다”는 문장이 가장 많이 달리는 것도, 중국 샤오훙슈의 ‘시공을 넘은 엄마의 잔소리’ 해시태그가 10억 조회를 넘긴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이 흐름은 한중 양국이 함께 마주한 인구 구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초고령사회를 향해 빠르게 걸어가고 있고, 그 안에서 ‘노년은 잉여’라는 오래된 등식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산업의 언어로만 읽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실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중국에서 2025년 7조 위안에서 2035년 30조 위안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치도 의미가 있겠지만, 제가 더 눈여겨보는 것은 주름과 사투리, 편집되지 않은 실수까지도 신뢰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의 공기입니다. AI 이미지가 넘쳐나는 지금, ‘인위적이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저는 이 장을 쓰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 중에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은가요. 카메라 앞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한 줄, 오래된 사진 한 장을 함께 들여다보는 저녁 한 번이 어쩌면 그분들에게는 박막례 할머니가 처음 스마트폰을 켜던 순간과 같은 무게를 지닐지도 모릅니다. 세대를 잇는 다리는 거창한 콘텐츠가 아니라, 그런 작은 관심에서부터 놓이기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2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박막례 할머니와 톈진 징야 양로원의 사례, 그리고 한중 실버 크리에이터 시장을 비교한 통계와 분석을 함께 만나보고 싶으신 분들은 위아북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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