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의 한 스튜디오, 조명이 켜지자 칠순의 여성이 카메라 앞에서 등을 곧게 폈습니다. 손에는 홍삼 제품이 들려 있었고, 화면 아래로는 실시간 댓글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은 노인의 ‘경제 기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은퇴 이후의 삶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취재 노트에 옮겨 적었던 문장이 있습니다. “은발세대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다. 라이브커머스는 그들이 평생 축적한 생활 지혜를 다시 시장 가치로 환원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다.” 중국사회과학원 인구노동경제연구소 왕리 부소장의 말이었습니다. 처음 이 문장을 들었을 때는 다소 학술적으로 느껴졌지만, 스튜디오 현장을 보고 나니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 할머니가 팔고 있던 것은 상품이 아니라, 60년을 살아온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숫자로도 그 흐름은 뚜렷합니다. 중국의 60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는 3억 5,100만 명, 이들의 월평균 이용 시간은 135시간을 넘습니다(China Skinny, 2025). 중국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2023년 약 910조 원 규모를 기록했고, 2026년에는 1,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Statista, 2025).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4년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3조 5,000억 원을 넘어섰고, 1회 방송당 평균 거래액은 577만 원으로 전년보다 51% 뛰었습니다(라방바 데이터랩, 2024). 이 숫자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저는 계속 떠올리게 됩니다.
같은 시기 서울에서 만난 한 5060 세대 진행자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TV홈쇼핑에서 오랫동안 상품을 소개해왔지만, 라이브커머스로 넘어오면서 화면 앞에 서는 사람은 대부분 3040 쇼호스트로 바뀌더라고 했습니다. 반면 항저우에서는 60세 이상만 모집하는 MCN이 메이크업부터 대본, 카메라까지 패키지로 지원하고, ‘할머니 삼총사’로 불리는 팀은 팔로워 300만 명을 넘기며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습니다. 같은 산업, 같은 기술인데 두 나라가 노인을 세우는 자리는 이렇게나 달랐습니다.
이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래 생각했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한국은 시니어를 여전히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먼저 떠올리고, 중국은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로 먼저 호명한다는 것입니다. 그 호칭의 작은 차이가 실제로 은발경제의 크기를 갈라놓고 있었습니다. 70대 할머니가 추천하는 홍삼, 80대 할아버지가 시연하는 보청기가 젊은 인플루언서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같은 세대가 겪어본 사람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흐름을 밝은 면으로만 그릴 수는 없습니다. 중국소비자협회는 라이브커머스 사기 피해의 62%가 60세 이상에게 집중돼 있다고 보고했습니다(2024). 새로운 시장이 열릴 때마다 가장 먼저 취약해지는 것도 결국 그 시장을 개척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저는 잊지 않으려 합니다. 2025년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65세 이상 인구는 1,024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규모의 세대가 소비자로만 머무를지, 생산자로도 나설지는 정책과 산업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취재 말미에 다시 만난 항저우의 할머니는 카메라가 꺼진 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세대는 평생 남을 위해 물건을 사기만 했어요. 이제야 처음으로, 내가 뭔가를 팔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챕터 전체를 관통하는 한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한국에서 만난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한 분은 “정부가 주는 소일거리”라는 표현을 스스로 썼습니다. 같은 노동인데 하나는 ‘기회’로, 다른 하나는 ‘배려’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정책의 결도 이 차이를 뒷받침합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38.1%에 이르지만(통계청, 2024), 노인일자리사업 예산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공공형 단기근로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실버 이코노미(银发经济)’를 국가 발전전략에 명시하며 2024년부터 온라인 직업훈련과 창업 지원을 60세 이상에게 별도로 열어주고 있습니다. 같은 고령화 속도를 겪으면서도, 한쪽은 부양의 대상을, 다른 한쪽은 신규 노동시장 참여자를 상상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저는 이 격차가 결국 우리가 노년을 바라보는 언어에서 시작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여러분 자신이 스마트폰 앞에서 평생 쌓아온 살림의 지혜나 손끝의 기술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지켜볼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박막례 할머니가 700만 유튜버가 된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시작이 그저 카메라 앞에 서보겠다는 작은 용기였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노인의 경제 기여는 연금을 받는 쪽에서 시장을 만드는 쪽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9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시니어 스트리머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 그리고 이 시장에 다가서려는 기업과 개인이 참고할 만한 진입 전략까지 함께 다루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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