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장날 아침, 저는 강화읍 풍물시장 뒤편 좌판 골목에 서 있었습니다. 순무 한 무더기와 젓갈 통을 앞에 둔 할머니가 손님이 내민 카드를 보시더니, 무릎 옆에 놓인 단말기를 슬며시 옆으로 밀어두셨습니다. 그러고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힌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웃으셨습니다. “그건 우리 아들이 놓고 간 건데, 나는 손이 안 가. 현금으로 주면 이천 원 깎아 줄게.” 손님은 잠시 망설이다 지갑을 열었고, 할머니는 거스름돈을 세는 동안 단말기 쪽으로는 끝내 눈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장날 좌판 위에 놓인 카드 단말기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저는 그 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단말기를 밀어내던 손은 거칠지도 성급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조심스러웠습니다. 장이 조금 한산해진 뒤에 이유를 여쭈니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르는 건 하겠는데, 잘못 눌렀을 때 그 돈이 어디로 가 있는지를 내가 몰라.” 저는 그 문장이 기계를 다루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돈을 맡기는 일이 아직 편치 않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강화군 인구는 69,698명이고, 그중 65세 이상이 28,402명으로 40.7%입니다. 같은 시점 전국 고령화율이 21.2%였으니, 이 섬은 전국 평균의 두 배 가까운 비율로 나이 든 이웃과 함께 살고 있는 셈입니다. 숫자를 읽고 나면 장터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좌판 앞의 그 손은 예외적인 한 사람의 사정이 아니라, 이 섬에서 가장 흔한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도착할 때 생기는 어긋남이 전국보다 먼저, 그리고 더 넓게 나타납니다. 읍내 식당에 무인 주문기가 놓이면 가장 먼저 곤란해지는 손님이 이 섬에는 유난히 많습니다. 은행 창구가 줄고 앱으로 하시라는 안내가 늘어날 때,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나가야 하는 이웃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뒤처짐이라기보다, 우리가 만든 기술이 아직 이 섬의 속도를 배우지 못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며 자주 마주치는 문제도 결이 같습니다. 기술은 대체로 사람이 해야 할 단계를 줄이는 쪽으로 발전하는데, 줄어든 단계 안에는 설명도 함께 사라집니다. 현금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며 계산이 손바닥 위에서 끝납니다. 반면 카드와 앱은 신뢰를 먼저 맡기고 결과를 나중에 확인하는 구조여서, 그 사이의 짧은 공백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편리해집니다. 할머니가 옆으로 밀어둔 것은 단말기가 아니라 그 공백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저는 그 손을 게으른 손이라고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 손은 육십 년 넘게 저울과 손바닥으로 셈을 해온 손입니다. 실제로 할머니는 순무 세 단 값과 거스름돈을 제가 휴대전화 계산기를 켜기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그 손이 물린 것은 계산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절차였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어르신을 기술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보다, 기술이 조금 더 천천히 걸어오게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잘못 눌러도 되돌릴 수 있다고 화면이 먼저 알려 주는 일, 글씨를 키우고 버튼을 줄이는 일, 마을회관에서 한 사람 옆에 한 사람이 앉아 같은 화면을 두 번 눌러 보는 일이 그것입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질러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사람 옆에 앉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풀어 설명해 주는 쪽에 더 큰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낯선 기계 앞에서 손을 거두어 본 적이, 혹은 그런 손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장이 파할 무렵 저는 다시 그 골목을 지났습니다. 할머니는 단말기를 앞치마 옆자리에 도로 올려두고 계셨습니다. 손녀가 붙여 준 것이라며 보여 주신 단말기 옆면에는 노란 딱지가 하나 붙어 있었고, 굵은 글씨로 “초록 버튼만 누르세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밀어두었던 손과 다시 올려둔 손 사이의 그 짧은 거리가, 지금 이 섬이 건너는 중인 폭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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