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여름, 산둥성 웨이하이의 한 지역사회 양로서비스센터를 찾았을 때 저는 손목에 은색 팔찌를 찬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팔찌를 가리키며 “이게 넘어지면 바로 아들한테 알려줘요”라고 말씀하시던 그 목소리가, 며칠 전 구로의 한 경로당에서 AI 스피커에 “오늘 뭐 먹었게?”라고 묻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이상하리만치 겹쳐 들렸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억양도 다른데, 외로움을 기술에 기대어 견디는 방식은 어쩌면 이렇게 닮았을까 — 그 질문 하나를 붙잡고 이번 장을 썼습니다.
제가 만난 웨이하이 센터 관계자는 “여기는 국가급 智慧养老 시범도시로 지정된 곳 중 하나”라며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챕터에 적어두었듯 중국은 이미 “2017년 공업정보화부·민정부·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공동 발표한 ‘智慧健康养老산업 발전 행동계획’을 통해 스마트양로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시킨 나라입니다. 민정부가 지정한 시범도시가 전국에 290여 곳이라는 숫자를 듣고, 저는 순간 우리나라 스마트경로당 2,700곳이라는 숫자와 견줘 보게 되었습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실감했습니다.

통계를 다시 짚어보면 이 만남의 무게가 더 선명해집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2025년 1월 1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3억 1,031만 명으로 처음 3억 명을 돌파했고, 65세 이상은 2억 2,023만 명으로 전체의 15.6%에 달했습니다. 같은 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요. 두 나라가 거의 같은 시기에 ‘노인 폭증’을 맞이한 셈인데, 저는 이 우연 같은 동시성이야말로 실버 브릿지가 놓일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웨이하이에서 만난 또 다른 인상은 규모의 차이였습니다. 중국이 국가 전략으로 밀고 있는 智慧养老 시장은 2025년 기준 약 8조 5,0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1,632조 원에 이르러 GDP의 6.2%를 차지합니다. 반면 한국의 스마트돌봄 관련 예산은 훨씬 작은 규모지만, 2025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함께 ‘고령자 디지털 리터러시 기술개발 사업’에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총 367.5억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을 보면, 크기는 작아도 촘촘하게 설계하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재가돌봄 원칙만 봐도 한국의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과 중국의 ‘9073 모델'(재가 90%·지역사회 7%·시설 3%)이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강대 정유신 교수는 한 칼럼에서 “중국의 스마트양로는 규모로 승부하고, 한국의 시니어테크는 섬세함으로 승부한다. 두 나라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드문 조합”이라고 짚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웨이하이의 팔찌와 구로의 스피커 앞에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중국은 3억 명이라는 압도적 시장과 데이터를 가졌고, 한국은 2008년부터 축적해온 장기요양보험 15년 노하우와 전국 256개 치매안심센터 운영 경험을 가졌습니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그림이, 두 나라가 나란히 놓일 때 비로소 채워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산업 뉴스가 아니라 우리 세대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025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통화스왑 계약과 함께 6건의 정부부처 간 MOU를 교환했는데, 그중 하나가 ‘실버산업 협력 MOU’였습니다. 보이스피싱 공조, 농산물 교역과 나란히 노인 돌봄이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것은, 이제 ‘노인 케어’가 복지의 영역을 넘어 두 나라 공동의 산업이자 생활 안전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만큼 우리가 서로에게서 배울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는 걸, 저는 이 협정문을 읽으며 새삼 생각했습니다.
책에는 웨이하이 센터장이 제게 건넨 말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노인을 돌보는 게 아니라 노인의 존엄을 설계한다”는 문장이었는데, 저는 그 말을 받아적으며 손이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중국 민정부 자료를 보면 2024년 기준 전국 居家养老服务站(재가돌봄센터)는 32만 개소를 넘어섰고, 이는 2015년 대비 4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입니다. 한국 역시 2025년 기준 전국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대상자가 62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나라 모두 ‘돌봄의 그물’을 촘촘히 짜는 데 국가의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저는 이 두 숫자를 나란히 적어두면서, 결국 통계란 사람의 얼굴을 숫자로 바꾼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2만 개소, 62만 명이라는 숫자 뒤에는 웨이하이의 그 할머니처럼 팔찌 하나에 안도하는 얼굴들이 있고, 구로의 스피커에 말을 거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숫자들 속에서 누구의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웨이하이의 한 골목 경로당에 한국산 AI 스피커 백 대가 놓이고, 그 데이터를 양국 연구자들이 함께 들여다보는 작은 실험 하나가 시작된다면 — 그것이 거창한 국가 프로젝트보다 오히려 더 빨리 우리 부모님의 저녁을 바꿔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리는 언제나 한 걸음씩 놓이는 법이니까요. 여러분 주변에는 혹시 이런 작은 다리를 이미 놓고 계신 분이 있는지, 저는 계속 귀 기울여 듣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8장 「스마트양로정책: 중한협력 가능성」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웨이하이의 팔찌부터 구로의 스피커까지, 두 나라 시니어테크가 만나는 접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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