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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2권 · 제9장 · 베이징 후통에서 만난 침과 뜸, 노년의 지갑 무게를 다시 묻다

한중 노년 한방의료 격차로 본 돌봄의 조건

기사입력 기사번호 51721

오늘은 제가 취재 중 가장 오래 서성였던 골목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베이징 후통(胡同)의 좁은 골목, 중의관(中醫館) 문틈으로 쑥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안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침을 맞고 계셨고, 그 옆방에는 서울 종로의 한의원 풍경이 그대로 겹쳐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가 뜸을 뜨며 지그시 눈을 감던 모습이었죠. 두 장면은 국경을 넘어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가면 만 원도 안 드는데, 한약은 한 제 지으면 20~50만 원이에요.” 이 한마디는 챕터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져줬습니다. 왜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의학이 노인의 지갑 앞에서는 이렇게 다른 무게로 다가올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종로 한의원의 따뜻한 쑥내음,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쌍화탕의 기억 — 그 감각적 친밀감은 양방 병원의 차가운 대기실과는 분명 다른 결이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숫자로 들여다보면 두 나라의 격차는 뚜렷합니다. 2024년 기준 중국의 중의 의료기관은 10만 3,704개, 전년보다 1만 1,173개나 늘었습니다. 중의약 위생 인력은 115만 9,000명으로 한국 전체 한의사 수(약 2만 5,000명)의 46배에 달하고, 2023년 한 해 중국인이 중의 의료기관을 찾은 횟수는 12억 8,000만 건이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한의원·한방병원 합산 약 1만 4,800곳으로 절대 수는 비교가 안 되지만, 60세 이상 노인의 86.6%가 한방의료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인구 대비 밀도가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한방의료 만족도도 79.5%로 꾸준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보험 제도의 차이였습니다. 한국은 2024년 4월에야 겨우 6개 질환에 한해 ‘연간 2개 질환, 최대 20일’ 한도의 첩약 건보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침·뜸·부항도 본인부담률이 30~40%나 됩니다. 그런데 중국은 중의 진료를 기본의료보험에 이미 전면 편입시켰고, 일부 지방정부는 중의 진료의 보험 지급 비율을 서의보다 오히려 높게 책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중국 노인들 사이에 “아프면 먼저 중의관”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것도 이해가 갔습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 중의관 원장님은 태극권 지도와 약선(藥膳) 식사, 계절별 양생(養生) 프로그램을 한 지붕 아래 제공하는 ‘의양결합(醫養結合)’ 시범센터를 보여주셨습니다. 2016년부터 시작해 2024년 현재 베이징에만 200여 개가 구축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한국의 요양병원과 한방병원이 여전히 별개 기관으로 운영되고, 요양시설 내 한의 진료가 촉탁의 형태로만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이 자연스레 겹쳐졌습니다.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데, 제도화의 속도는 이렇게 갈리는구나 싶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이 차이가 단순히 제도 하나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 65세 이상 인구의 66%가 만성질환을 앓고, 한국도 노인 10명 중 9명이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초고령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노인들은 양약 장기 복용의 부작용을 걱정하며 전통의학의 문을 두드립니다. 다만 그 안에서도 철학은 갈립니다. 중국 노인은 ‘미병(未病) 치료’ — 병이 되기 전에 몸의 균형을 잡는다는 양생 철학에 익숙하지만, 한국 노인은 한의원 방문 목적의 93.9%가 ‘질환 치료’일 만큼 이미 아픈 곳을 고치는 수단으로 전통의학을 대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예방이 아니라 치료가 우선인 셈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 혹은 우리 자신이 나이 들어 아플 때 먼저 떠올리는 곳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그곳을 선택하는 이유는 정말 ‘몸에 맞아서’였는지, 아니면 ‘그럴 형편이 돼서’였는지 한 번쯤 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한중 두 나라가 서로의 열매를 나눌 수 있다면, 중국의 양생·양로 결합 모델이 한국 요양 시스템에 영감을 주고, 한국의 디지털 한방 기술이 중국 기층 중의관에 혁신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실버 브릿지’라는 이름값을 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챕터를 쓰며 제가 다시 만난 것은 돌봄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한 상하이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딸이 다 도시로 나가 살아서, 결국 저 혼자 몸을 돌봐야 해요. 그래도 사구(社区·커뮤니티) 위생소가 가까이 있어 다행이지요.” 실제로 중국은 이미 ‘9073’ 양로 모델 — 노인의 90%는 재가에서, 7%는 지역사회 돌봄으로, 3%만 시설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하는 정책을 전국에 표준화해 두었습니다. 한국도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을 시범 도입했지만, 아직 전국 단위 표준 모델로 자리 잡지 못했고 지자체별 편차가 큽니다. 한국의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이 2023년 기준 21.1%로 계속 늘고 있는데, 정작 그 혼자 사는 노인을 받쳐줄 촘촘한 지역 돌봄망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쓰면서 제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혼자 사시다 허리를 다치셨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은 큰 병원이 아니라 동네 한의원이었습니다. “큰 병원 가면 예약부터 며칠이니, 일단 침이라도 맞고 보자”는 마음이었죠. 그 선택에는 비용도, 익숙함도,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 곁에서 봐준다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도 혹시 그런 이유로 큰 병원 대신 한의원 문을 먼저 두드리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선택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이유를,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9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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