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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2권 · 제10장 · 어머니의 서랍장 속 홍삼, 그것은 이성일까 맹종일까

한중 시니어 보건품 소비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기사입력 기사번호 52464

몇 해 전 서울 변두리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어머니 한 분이 생각납니다. 손가방 안에는 뜯지도 않은 홍삼 제품 세 상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거 왜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물었더니, 그분은 조금 멋쩍게 웃으며 “효도관광 갔다가 다들 사길래” 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는 그 대답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늘은 그 장면에서 출발해, 한국과 중국 시니어들이 건강기능식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제 책의 이번 장은 이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정말 ‘이성적’으로 보건품을 소비하고 있을까요?” 취재를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것만 먹으면 낫는다”는 문장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것만 먹으면 암도 낫는다”는 과대광고에 속아 수백만 원을 잃는 어르신들을 만났고, 중국에서는 ‘회의 판매(会销)’라는 이름으로 3만 명이 넘는 노인이 10억 위안 이상을 사기당한 사건도 취재 노트에 적어두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절박함을 파고드는 언어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숫자로 짚어보면 그 규모가 더 실감납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약 6조 440억 원, 구매 경험률은 82.1%로 사실상 대한민국 대부분의 가정이 이 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61세 이상 고연령층에서는 홍삼이 12.9%로 가장 높은 구매율을 기록했고, 전체적으로는 프로바이오틱스(25.2%), 비타민C(23.7%), 복합비타민(23.2%) 순이었습니다. 중국은 규모부터 다릅니다. 2024년 중국 보건품 시장은 전년 대비 5.9% 성장한 3,475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70조 원에 달합니다. 60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1.1%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고령층은 이 시장의 가장 큰 손님입니다.

제가 두 나라를 오가며 느낀 결정적인 차이는 ‘판매의 얼굴’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소비자원이 분석한 무료체험 피해 상담 722건 가운데 사업자가 청약철회를 거부한 사례가 519건, 71.9%에 달했습니다. “무료 체험 후 효과 없으면 100% 환불”이라 유인해놓고, 막상 반품을 요구하면 “포장 개봉”, “본품 복용”을 이유로 거절하는 식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얼굴이 훨씬 조직적입니다. 무료 달걀이나 건강검진을 미끼로 노인들을 모임에 초대한 뒤 집단 심리를 이용해 고가 제품을 파는 ‘会销’이 대표적입니다. 신화통신은 원가 11.5위안, 우리 돈 2,300원짜리 제품이 “세포 노화를 역전시키고 당뇨, 심장병, 알츠하이머를 치료한다”는 광고와 함께 수천 위안에 팔린 사례를 보도했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저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한국의 ‘효도관광 강매’와 중국의 ‘会销’은 방식은 다르지만 겨냥하는 심리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불안, 자녀들과 떨어져 지내며 생기는 외로움과 사회적 유대에 대한 갈증, 그리고 “나만 안 사면 손해”라는 집단 심리. 그 경로당의 어머니가 홍삼 세 상자를 산 것도, 제품이 특별히 좋아서라기보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웃들과의 관계, 그 순간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소비의 이면에는 늘 사람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조금 더 넓혀 보면, 결국 인구 구조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고, 중국 역시 60세 이상 인구가 빠르게 늘며 노년층 맞춤 제형, 즉 삼키기 쉬운 액상이나 츄어블 제품이 전체의 40%를 차지할 만큼 시장이 고령 친화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자녀와 떨어져 사는 부모 세대가 늘어날수록, 건강 정보를 얻는 통로는 병원이나 약사가 아니라 방문판매원이나 TV 홈쇼핑, 지인의 추천이 되기 쉽습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조사에서도 TV 홈쇼핑과 방송(35~40%), 지인 및 가족 추천(25~30%)이 60대 이상의 주요 정보 습득 경로로 나타났는데, 이 두 경로 모두 전문적 검증보다는 감성적 설득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의 약장, 혹은 여러분 자신의 서랍장을 한번 열어보시겠습니까. 그 안에 쌓인 제품들은 정말 필요해서 산 것입니까, 아니면 그 순간의 분위기와 외로움이 대신 결정한 것입니까. 정답을 다그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만 먹으면”이라는 말 앞에서 한 박자 쉬어가고, 가족에게 전화 한 통 해보고, 약사나 의사에게 한 번 더 물어보는 습관 하나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 시니어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강 리터러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0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통계와 제도, 그리고 제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까지 담아냈습니다.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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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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