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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2권 · 제14장 · 제가 만난 침묵 – 노인의 마음은 왜 늘 뒷전이었을까

한중 노인 정신건강, 숫자 뒤에 감춰진 이야기

기사입력 기사번호 52467

서울 변두리의 한 노인복지관 상담실에서, 저는 일흔여덟 살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이건 병이 아니에요. 그냥 사는 게 그런 거지.” 손사래를 치며 웃으시던 그 표정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식들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 삼키고 또 삼킨 그 말들이, 얼마나 많은 노인들의 하루하루에 조용히 쌓여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실버 브릿지」 제2권을 쓰며 제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체 질환에는 즉각 병원을 찾지만, 마음의 병에는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넘기는 문화가 뿌리 깊다.” 저는 이 한 문장 안에 한국과 중국 두 나라 노인 정신건강 문제의 핵심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지만, 마음이 아프면 참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 그 침묵의 무게를 숫자로 마주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위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통계는 제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2024년 한국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4,872명, 그중 65세 이상 노인은 하루 평균 10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전체 연령 자살률의 약 1.5배, 80세 이상 초고령층에서는 60.6명까지 치솟습니다. OECD 평균이 16.3명이니, 우리는 그 두 배 반을 넘어서고 있는 셈입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세상을 떠난 65세 이상 노인만 18,044명. 저는 이 숫자를 옮겨 적으면서 손이 떨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 건너 중국에서 만난 풍경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둥성의 한 농촌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은 자살을 이야기하기보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의 우울 증상 검출률은 40.97%에 달하고, 농촌 지역(47.19%)이 도시(31.84%)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특히 독거하며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의 우울 유병률은 50.38%, 둘 중 한 명이 우울의 그늘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로 위기를 드러낸다면, 중국은 ‘광범위한 우울의 확산’이라는 형태로 위기를 앓고 있었습니다. 깊이의 위기와 폭의 위기, 저는 이것을 그렇게 정리했습니다.

제가 이 장을 쓰며 가장 안타까웠던 대목은 통계 자체가 아니라, 그 통계 뒤에 숨은 ‘접근성의 격차’였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약 4,000곳, 배치된 상담사는 6,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2억 9,700만 명에 이르는 노인 인구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입니다. 한국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노인복지관 등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갖추어져 있지만, 정작 노인 당사자들이 ‘정신과’라는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인프라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마음이 문제였던 겁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고령화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한국과 중국은 지금 비슷한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1,024만 명, 전체의 19.8%를 넘어섰고,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2억 9,700만 명, 21.1%에 이릅니다. 그런데 정신건강 서비스는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자살 원인 중 ‘정신적·정신과적 문제’가 5,254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제생활 문제’가 4,398명으로 뒤를 이었다는 통계를 보면서, 저는 마음의 병과 주머니 사정이 서로 얽혀 노인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구조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은퇴 후 급격한 소득 감소, 배우자 사별, 사회적 고립이 겹치는 순간, 누구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삽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 이해국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인 자살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실패다. 우리가 노인의 마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명의 후퇴와 다름없다.” 저는 이 문장을 취재 노트 맨 앞장에 옮겨 적어두었습니다. 우리가 부모 세대, 혹은 머지않은 우리 자신의 미래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이 문장 안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주변의 어르신께 오늘 마음이 어떠신지 여쭤본 적이 언제였나요.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넘기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거대한 통계를 바꾸는 가장 작고도 확실한 시작일지 모릅니다. 한중 양국이 이제 막 이 사각지대를 국가 과제로 끌어올리기 시작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일은 가까운 어른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드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4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아북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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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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