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수첩을 펴놓고 두 개의 화면을 나란히 띄워 놓은 적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중국 抖音의 ‘我是田姥姥’가 며느리와 티격태격하는 60초짜리 콩트를 찍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박막례 할머니가 손녀 김유라 PD와 함께 8분짜리 여행 브이로그를 찍고 있었습니다. 같은 ‘카메라 앞의 할머니’인데, 화면 속 공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그 낯선 온도차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서 이번 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책 「디지털 실버」 2장에는 이런 문장을 적어두었습니다. “田姥姥의 콘텐츠는 평균 30~60초의 가족 콩트다. 며느리·손주와의 좌충우돌을 통해 ‘예측 가능한 통쾌함’을 매일 공급한다.” 426개 작품으로 누적 좋아요 8억 8천만을 모았다는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田姥姥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판매 채널 그 자체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79세 ‘八零徐姥姥’는 라이브 방송 단 한 번으로 500만 위안, 우리 돈 약 9억 5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합니다.
숫자를 조금 더 펼쳐보면 이 격차의 크기가 보입니다. 중국 인터넷정보센터(CNNIC)가 2025년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는 1억 6,100만 명, 침투율 52%에 이릅니다. 飞瓜数据에 의하면 抖音 상위 시니어 크리에이터 20명 중 9명이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하고, 월평균 28.8회 방송한다고 하니 거의 매일 마이크 앞에 서는 셈입니다. 반면 한국은 모바일인덱스 조사에서 6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 시간이 5년 사이 235% 늘었고, 한국언론진흥재단 2024 조사에서는 60대의 뉴스·시사정보 유튜브 의존도가 82.6%, 70대 이상은 93.1%에 달했습니다. 그런데도 100만 구독자를 가진 한국 유튜버 120여 명 가운데 70대는 박막례 할머니 단 한 분뿐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시니어는 넘쳐나는데,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시니어는 여전히 드물다는 뜻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자꾸 떠올린 건 박막례 할머니의 8~15분짜리 영상들이었습니다. 田姥姥가 오늘 저녁 라방에서 무엇을 팔지 고민한다면, 박막례 할머니는 다음 영상에서 어떤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합니다. 2024년 12월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박막례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건 식품·화장품 브랜드까지 냈다고 하더군요. 밀라논나 장명숙 선생님도 99만 구독자의 패션 큐레이션을 발판 삼아 도서와 강연, 자체 브랜드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짧고 즉각적인 판매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천천히 보여주며 신뢰를 쌓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흐름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田姥姥는 14억 인구와 알고리즘이 만든 실시간 거대 시장 위에 서 있고, 박막례 할머니는 5천만 인구와 검색 기반 신뢰 자산 위에 서 있습니다. 시장의 몸집은 비교할 수 없지만, 콘텐츠가 오래 살아남는 힘, 즉 IP의 수명이라는 점에서는 한국형 서사가 분명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걸 두 화면을 번갈아 보며 확인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한 MCN 관계자는 “손주가 카메라를 들어주는 시간, 며느리가 콘텐츠를 기획해주는 시간”이 두 나라 모두에서 성공의 공통분모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田姥姥도 박막례 할머니도 혼자서 채널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세대가 함께 붙어서 만든 콘텐츠라는 점이 같습니다. 다만 한국은 그 협업 구조 자체가 아직 희소합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는 지금, 카메라 앞에 설 준비가 된 시니어는 훨씬 많은데, 그 옆에 앉아줄 손녀와 며느리의 시간, 그리고 사회적 응원은 충분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을 쓰며 다시 확인한 통계 하나가 있습니다. 중국은 2025년 기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천만 명을 넘어서며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고, 중국 국무원은 ‘실버경제’ 육성을 국가전략으로 명문화해 콘텐츠·커머스 창업을 지원하는 세제 혜택까지 마련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2025년을 지나며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같은 고령화라도 중국은 ‘소비 시장’으로, 한국은 아직 ‘복지 대상’으로 먼저 호명된다는 인상을, 저는 두 나라의 정책 문서를 나란히 읽으며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 책 2장 말미에는 이런 메모를 남겨두었습니다. “시니어 크리에이터는 결과가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다. 田姥姥를 키운 건 재능이 아니라 라이브 커머스 생태계였고, 박막례 할머니를 키운 건 손녀 한 사람의 헌신이었다.” 저는 이 문장을 쓰고 나서 오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개인의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는 결국 확률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손녀나 며느리가 옆에 없었다면, 박막례 할머니의 이야기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그 ‘옆자리’를 제도적으로 만들어드릴 수는 없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을 독자 여러분께도 그대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원고를 쓰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박막례 할머니처럼 될 수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 서보지 못한 분이 몇 분이나 계실까요. 100만 구독자를 가진 70대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박막례가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곁에도,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된 어른이 계시지 않은가요. 그 손을 잡아드리는 일이 누구의 몫이어야 할지, 저는 이 장을 쓰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2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田姥姥와 박막례 할머니의 콘텐츠 문법 비교, 한중 시니어 인플루언서 시장 진출 전략과 주의사항까지 함께 다루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위아북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더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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