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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4권 · 제3장 · QR코드 앞에서 굳어버린 손, 그 뒤의 이야기

기사입력 기사번호 54787

실버 브릿지 · 제4권 제3장 (hero)

서울 구로의 한 식당에서였습니다. “카드는 안 받습니다. QR로 찍어주세요.” 종업원의 무심한 한마디에, 제 앞에서 밥을 먹던 78세 어르신의 얼굴이 순간 굳어버리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려던 손이 허공에서 잠시 멈췄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어색하게 들어 올리던 그 장면이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저는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은 카메라를 켜는 방법도, QR코드를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도 몰라 몇 번이고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뒤에 줄이 길어지자 어르신은 결국 “다음에 올게요”라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편리함을 위해 설계된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밥 한 끼를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책 「디지털 실버」 제3장에서 저는 이 장면을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간편결제는 ‘편리함’의 상징이자 동시에 세대를 가르는 얇지만 차가운 벽이 되었다.”

숫자로 보면 이 벽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고령층(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2.3%에 그칩니다. 전체 취약계층 평균이 77.5%인 것과 비교하면, 고령층은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보다도 뒤처진 집단입니다.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은 73.0%로 1년 사이 6.5%p나 올랐다는데, 저는 이 숫자를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기기는 손에 쥐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니까요.

같은 시기 중국을 취재하면서 저는 전혀 다른, 그러나 놀랍도록 닮은 풍경을 만났습니다. 베이징의 한 노점상 앞에서 만난 중국 노인 한 분은 현금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한 경험을 담담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캐시리스 사회로 전환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의 제55차 보고서를 보면, 2024년 12월 기준 전체 비네티즌 중 60세 이상이 46.8%에 이릅니다. 그리고 『2025 중국 노년 디지털 결제 안전 보고서』는 노년 사용자의 71.2%가 제3자 결제앱에 은행카드를 연동하는 것을 ‘불신’ 또는 ‘매우 불신’한다고 답했다고 밝힙니다. 한국의 72.3%와 중국의 71.2%, 이 두 숫자는 전혀 다른 제도와 시장에서 나왔지만 제게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이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노인은 ‘이중 장벽’ 앞에 섭니다. 키오스크를 먼저 통과해야 QR결제 화면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2024년 노인인권 실태조사에서도 70대 이상 응답자 다수가 “무인결제기 앞에서 뒤에 줄이 길어지면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구로 식당에서 본 그 어르신처럼 말입니다. 반면 중국의 노인은 ‘현금 거부’ 사회의 반작용 속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현금을 거절당한 노인들의 항의가 사회 문제로 번지자, 2024년 중국 국무원과 인민은행은 「결제서비스 편의성 제고 의견」을 발표하며 알리페이·위챗페이의 ‘적로화(適老化) 버전’ 의무화를 다시 강조했습니다. 큰 글씨, 음성 안내, 가족 대리 결제 기능까지, 저는 이런 변화들이 결코 사소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만남들에서 얻은 통찰은 하나입니다. 노년층은 기술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했을 때 돌아갈 안전망이 없는 설계를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런민대학 인구학 연구팀은 『중국 노년 디지털 격차 조사 분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지털 결제의 편의성은 ‘평균의 얼굴’에서 빛나지만, 그 평균 밖으로 밀려난 노년층에게는 오히려 일상의 단절이 된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구로 식당에서 어르신이 스마트폰을 내려놓던 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 손은 기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춰지지 않은 세상 앞에서 잠시 멈춰 선 것이었습니다.

2025년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같은 해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3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인구 구조의 무게중심이 노년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결제 인프라만큼은 여전히 젊고 빠른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키오스크·모바일앱의 고령자 편의 제공을 의무화하고 ‘디지털배움터’를 경로당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제도가 사람을 따라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반복된 문제 제기가 필요한지를 새삼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무인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적 있으신가요, 혹은 여러분 자신이 QR코드 앞에서 순간 막막해진 적은 없으신가요. 저는 이 질문을 계속 던지고 싶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뒤에서 조용히 안내해줄 사람 한 명이 옆에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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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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