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를 다니다 보면 유품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반지, 만년필, 손때 묻은 일기장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어느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저는 처음으로 다른 종류의 유품을 마주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스마트폰이었습니다. 화면을 켜면 잠금이 걸려 있고, 그 안에는 사진 수만 장과 10년 치 카카오톡 대화, 결제 잔액과 게임 캐릭터까지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유족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대체 누구 것인가요.” 저는 그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이 문제를 「디지털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하며 읽은 자료 중 가장 마음에 걸린 문장이 있습니다. 중국 법치일보 사설이 던진 말이었습니다. “디지털 유산 처리는 프라이버시권과 상속권의 균형 위에 서 있다. 고인이 남긴 메시지는 유족에겐 마지막 목소리이지만, 동시에 대화 상대방의 사생활이기도 하다.” 저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습니다. 유족에게는 그리움을 풀어낼 마지막 통로이지만, 대화 상대방에게는 여전히 지켜져야 할 사생활이라는 것. 이 둘 사이에 법도, 관습도 아직 선을 그어놓지 못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 문제의 크기가 더 선명해집니다. 2024년 중화유언고에 접수된 가상자산 포함 유언장은 458건으로, 전년 대비 217% 폭증했습니다. 그중 위챗 계정이 차지한 비율이 41%로, 전통 자산인 부동산 28%를 처음으로 앞질렀습니다. 글로벌 디지털 유산 시장은 2024년 130.7억 달러에서 2034년이면 557.5억 달러로 네 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 시장도 2024년 기준 146.6억 달러 규모이고, 60대의 스마트폰 필수 인식률은 이미 60.7%에 이릅니다. 실버 세대가 더는 디지털과 무관한 세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도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통일된 표준약관조차 없습니다. 네이버는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망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 정보”로 보아 유족에게도 제공하지 않고, 카카오 역시 대화 내역과 친구 목록 같은 비공개 정보를 원칙적으로 내주지 않습니다. 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첨부해 계정 삭제를 요청하는 것, 사실상 그것이 전부입니다. 봉인이냐 삭제냐, 둘 중 하나만 가능한 셈입니다. 중국은 2021년 민법전 제127조로 가상자산 보호를 법에 명시했지만, 정작 텐센트는 “QQ·위챗 계정은 등록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증여·상속·양도 어떤 방식으로도 이전할 수 없다”고 약관에 못 박아 두었습니다. 법은 인정하되 플랫폼은 거부하는 모순이, 국경을 넘어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이 취재에서 정말 눈여겨본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중화유언고 백서에 따르면 90後(1990년대생)의 21.5%, 00後의 19.7%가 이미 유언장에 가상자산을 명시했습니다. 80後는 12.7%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차이입니다. 36세의 한 게임 스트리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방송 계정을 동생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세대의 순서가 뒤집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은 부모 세대가 먼저 유산을 정리하고 자녀에게 물려주지만, 디지털 유산에서는 젊은 세대가 먼저 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 준비는 부모 세대인 60대, 70대에게도 되돌아올 것입니다.
이 흐름을 지켜보며 저는 한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유산이라는 말은 결국 기술 용어가 아니라 가족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클라우드에 잠긴 사진 5만 장은 데이터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고, 카카오톡 대화창은 서버 기록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나눈 말들입니다. 제도가 이를 재산으로만 다루려 할 때, 정작 유족이 마주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그리움이라는 감정입니다. 법이 아직 이 감정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챕터를 쓰며 가장 깊이 느낀 지점이었습니다.
한국의 고령층 인터넷 보급률은 이미 82.5%에 달하고, 중국의 네티즌은 11억 2,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두 나라 모두 실버 세대가 디지털 세계의 주변인이 아니라 이미 그 안의 거주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유산 상속 제도는 여전히 부동산과 예금, 만년필과 반지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주항공 참사 이후 삼성·애플·카카오가 이름을 뺀 전화번호 한정 제공에 합의한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지만, 이는 일회성 행정 조치일 뿐 일반 사망자에게 적용될 표준은 아직 없습니다. 정책이 사고 이후에야 한 뼘씩 움직이는 사이, 매일 누군가의 계정은 조용히 잠겨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스마트폰과 계정들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남겨질 흔적입니다. 비밀번호를 가족과 나눌 것인지, 어떤 대화는 지우고 어떤 기억은 남길 것인지 — 이 질문에 미리 답을 준비해두는 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자녀에게 건넬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배려일지 모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취재 노트를 그대로 책에 옮겨 담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8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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