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지난달 구로의 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상치 못한 질문 하나를 받았습니다. “박 기자, 다음 달에 어디 가느냐고 서로한테 그렇게 물어. 이상해?” 저는 이상하지 않다고, 오히려 그게 요즘 노년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경로당을 나서면서 저는 이 장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노년이 지금 어떤 길 위에서, 어떤 속도로 걷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제가 자료를 파고들며 가장 먼저 붙잡힌 대목은 중국의 ‘실버열차(银发专列)’였습니다. 2025년 2월, 중국 상무부와 문화여유부 등 9개 부처가 공동으로 발표한 실행계획은 2027년까지 전국에 100개 이상의 노년 맞춤형 열차 노선과 연 2,500편의 정기 운행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쓰촨성에서 출발하는 판다특급은 소수민족 환영의식과 전통공연을 배치해 체험형 교양여행을 표방하고, 산시성의 실크로드 열차는 1회 200명 이상을 태우며 넓은 침대와 온도조절 시스템, 노약자 전용 화장실까지 갖췄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열차 한 칸이 하나의 작은 마을이 되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숫자로 옮겨보면 그 규모가 더 선명해집니다. 중국 문화여유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60세 이상 관광객의 여행 횟수는 11.6억 회로 전체 국내 관광객의 20.6%를 차지했고, 신화통신은 2025년 실버관광 시장이 1조 위안, 2028년에는 2.7조 위안까지 성장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하나투어의 60세 이상 예약자 비중은 전년 대비 6%포인트 늘어 25%를 돌파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아보면서, 두 나라 노년 세대가 더 이상 집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노년여행’이라도 두 나라가 그리는 그림은 사뭇 다릅니다. 2017년부터 운행해온 철새열차(候鸟专列)는 매년 10월 하얼빈에서 따뜻한 싼야로 내려갔다가 이듬해 4월 초 다시 북상하는, 이른바 ‘겨울 피한 6개월 체류’ 프로그램입니다. 열차 안에는 상주 의료진과 산소통, 응급 구급키트가 배치되고, 이동 중 발생한 의료비는 타지역 의료보험 정산이 가능하도록 제도화됐다고 합니다. 객실에는 노래방과 마작 테이블도 있다고 하니, 달리는 열차가 곧 이동하는 경로당인 셈입니다. 반면 한국은 정반대의 문법을 씁니다. 하나투어는 ‘트립앤조이 시니어’ 브랜드로 항공 비즈니스석, 4~5성 호텔, 15명 내외의 소그룹, 가이드 2인 배치를 기본으로 삼았고, 노랑풍선·참좋은여행·교원투어는 와인 미식이나 정원 산책 같은 테마투어로 프리미엄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국가가 놓은 철길과, 민간이 설계한 소규모 프리미엄 여정. 저는 이 두 갈래 길이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이 자료들 앞에서 오래 멈춰 있었던 이유는, 통계 뒤에 숨은 ‘결정권자의 이동’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자녀가 부모의 여행을 대리 예약했다면, 이제는 시니어 본인이 여행지와 항공, 숙박, 가격을 직접 비교해 구매합니다. 65세 이상 인구의 국내관광 경험률이 84.5%에 이르고 시니어 관광객 규모가 약 822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숫자는, 결국 노년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대상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중국 역시 60세 이상 인구 3억 1천만 명이라는 저수지가 실버열차·크루즈·온천투어를 스스로 선택해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여행업계의 흐름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인구 구조 자체가 바뀌었고, 중국은 실버경제 규모가 7조 위안에 이를 만큼 소비 축이 노년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연금과 자산을 갖춘 세대가 처음으로 대규모 여가 소비의 주체가 된 시점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산업 통계가 아니라, 한 세대가 사회 속에서 자기 자리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존엄의 다른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하나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 곁의 부모님, 혹은 나 자신은 다음 여행을 누구의 결정으로 떠나고 있습니까. 자녀가 골라준 효도관광입니까, 아니면 본인이 직접 비교하고 예약한 여정입니까. 구로에서 만난 어르신들이 서로에게 “다음 달에 어디 가느냐”고 묻던 그 짧은 인사가, 저에게는 노년의 일상 속에 여행이 건강검진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루틴으로 자리잡았다는 증거로 다가왔습니다.
중국이 실버열차로 이동의 복지를 선언했다면, 한국은 액티브시니어 패키지로 선택의 복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두 나라는 같은 진실 앞에 서 있습니다. 노년의 삶에서 여행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이며, 이동성과 연결성을 보장하는 일이 곧 노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2027년 중국의 실버열차 100개 노선이 완성되고 한국의 초고령사회가 더 깊어질 즈음, 두 시장은 서로의 노년 인프라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노년여행의 통계와 사례, 그리고 그 안에서 제가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궁금해하실 독자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책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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