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취재 중 만난 한 독자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의 스마트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몇 달째 서랍 속에 넣어두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지우자니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 같은 게 사라질 것 같고, 그대로 두자니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고.”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오늘 다루려는 주제를 떠올렸다. 우리가 평생 쌓아온 사진과 대화, 잔액과 계정 — 0과 1로 이루어진 삶의 흔적을 누가 물려받아야 하는가. 이번 호에서는 그 질문을 韩国과 中国 두 나라의 银发一代가 지금 막 마주하기 시작한 “새로운 유산 문제”로 풀어보려 한다.
취재를 하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숫자는 중국 쪽에서 나왔다. 2024년 中华遗嘱库에 등록된 가상자산 포함 유언장은 458건으로, 전년 대비 217% 폭증했다. 그중 微信 계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41%에 달해, 처음으로 부동산(28%)을 앞질렀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잠시 멈칫했다. 누군가에게는 위챗 하나가 이제 아파트 한 채보다 더 무겁게 다뤄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화창 하나, 잔액 몇 위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관계의 기록 — 그것이 유언장에 명시해야 할 만큼 실체 있는 재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을 숫자로 좀 더 넓혀 보면 그림이 분명해진다. 전 세계 디지털 유산 관리 시장 규모는 2024년 130.7억 달러에서 2034년 557.5억 달러로, 연평균 15.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십 년 사이 네 배 넘게 커지는 셈이다. 중국은 2025년 6월 기준 인터넷 이용자 11억 2,300만 명(보급률 79.7%), 그중 위챗·QQ 같은 메신저 이용자만 10억 9,400만 명에 달한다. 매년 1,000만 명이 세상을 떠난다고 가정하면, 그만큼의 디지털 자아가 매년 “주인 없는 상태”로 남겨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24년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82.5%, 60세 이상 인구 중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60.7%에 이른다. 이제 노년 세대 역시 보편적인 디지털 자산 보유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문제를 법과 제도가 어떻게 다루고 있느냐는 대목에서 한국과 중국이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통일된 표준약관조차 없이 “플랫폼 자율”에 맡겨진 상태다. 네이버는 회원의 계정과 비밀번호를 “본인만 행사할 수 있는 일신전속적 정보”로 분류해 유가족에게도 제공하지 않는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나 친구 목록 같은 비공개 정보는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유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망진단서와 가족관계증명서, 신분증 사본을 첨부해 “계정 해지 신청”을 하는 것뿐이다. 아버지의 카카오톡은 결국 “영원히 봉인”되거나 “완전히 삭제”되는 두 갈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2024년 12월 제주항공 참사 이후 상황이 조금 움직였다. 유가족들이 고인의 마지막 통화 기록을 확인하고 싶다는 요청을 잇달아 내놓자, 정부와 삼성전자·애플·카카오가 협의해 “이름을 뺀 전화번호”를 유가족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이는 일회성 행정 조치였을 뿐, 일반 사망자에게 적용될 표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중국은 반대로 법은 있는데 플랫폼이 거부하는 모순 속에 있다. 2021년 시행된 《민법전》 제127조는 “데이터, 네트워크 가상재산의 보호에 관해 법률에 규정이 있으면 그 규정에 따른다”고 명시해 한국보다 한발 앞서 있다. 2024년에는 최고인민법원이 “데이터·네트워크 가상재산 분쟁”이라는 새로운 사건 유형을 신설해 사법 구제의 문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텐센트는 약관에 이렇게 못박아 두었다. “QQ 계정의 소유권은 텐센트에 있으며, 이용자는 사용권만 가질 뿐 증여·상속·임대·양도 등 어떤 방식으로도 타인에게 계정을 이전할 수 없다.” 더우인(抖音)은 사망진단서와 직계가족 증빙을 제출하면 잔액만 반환하고, 계정 자체는 등록 휴대폰 번호를 변경해야만 이전이 가능하다. 법은 인정하는데 플랫폼은 거부하는 역설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 대목에서 눈여겨본 건 오히려 중국의 젊은 세대가 보인 반응이었다. 《중화유언고백서(2024)》에 따르면 90後(1990년대생)의 21.5%, 00後(2000년대생)의 19.7%가 이미 유언장에 가상자산을 명시했다. 80後는 12.7%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세대 차이다. 18~30세 청년 유언장 작성자 수는 5년 전보다 300% 폭증했다. 36세의 한 게임 스트리머는 2024년 유언장을 남기며 자신의 방송 계정을 동생에게 넘기겠다고 명시했다고 한다. 나는 이 흐름을 접하며, 결국 이 파도가 그들의 부모 세대 — 지금의 60~70대 银发一代에게도 곧 밀려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세대가 먼저 “내 계정은 이렇게 처리해달라”고 써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부모가, 언젠가 자신의 순서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는 없을 것이다.
왜 이 만남과 이 숫자들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는가 하면, 결국 이 문제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法治日报》 사설은 이렇게 짚었다. “디지털 유산 처리는 프라이버시권과 상속권의 균형 위에 서 있다. 고인이 남긴 메시지는 유가족에게는 마지막 목소리이지만, 동시에 대화 상대방의 사생활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는 로그인 인증과 암호 해제의 문제이지만, 윤리적으로는 사생활과 가족 감정의 경계에 관한 문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취재원이 서랍 속에 넣어둔 아버지의 스마트폰을 다시 떠올렸다. 그가 망설였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있을지 모를 누군가와의 대화, 아버지만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사회적 배경에서 조금 더 넓혀 보면, 결국 고령화와 디지털화가 동시에 가속되는 두 나라의 공통된 숙제와 만난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고, 중국 역시 급속한 고령화 속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부모 세대의 디지털 흔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시에, 그것을 정리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일본의 “슈카쓰(終活)” 문화 — 살아있을 때 미리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흐름이 한국과 중국에서도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부와 플랫폼, 그리고 가족이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 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오늘 갑자기 떠나야 한다면, 당신의 스마트폰 안에 있는 사진과 대화, 계정들은 누가 어떻게 정리해주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그 답을 지금, 가족에게 미리 말해둔 적이 있는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다정한 유언일지도 모른다. 계정 하나를 정리하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남겨진 이들이 두 번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유품은 더 이상 “이름을 새긴 만년필”이나 “빛바랜 일기장”이 아니다. 그것은 클라우드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5만 장의 사진이며, 5년치 위챗 대화이며, 결제 정보가 연결된 휴대폰이다. 한국은 통일된 법제가 없어 유가족이 “삭제냐 봉인이냐”의 이분법 앞에 놓이고, 중국은 법은 있으나 플랫폼이 이를 거부해 결국 90後 청년들이 먼저 펜을 들었다. 전 세계 13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은, 결국 누군가는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과 중국의 银发一代는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처음으로 “내가 남긴 0과 1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가족에게 남기는 마지막 사랑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은빛 다리: 디지털 银发》 제8장에 조금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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