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취재를 다니다 보면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베이징 차오양구의 어느 단지 광장,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시간에 태극권 동호회원 마흔 명 남짓이 천천히 팔을 뻗던 모습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68세 리 선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리 선생의 하루를 그대로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리 선생의 오전은 정확했습니다. 5시 30분 태극권, 8시엔 단지 안 ‘양로역참’에서 12~15위안짜리 영양식, 오후엔 커뮤니티 위생서비스센터에서 만성질환 관리. 제가 놀란 건 이 모든 것이 걸어서 몇 분 거리 안에서 끝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베이징시는 이런 거점을 2024년 기준 1,700개소 이상 운영하며 ’15분 양로 서비스권’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리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단지를 벗어날 일이 별로 없어요. 벗어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 말이 왜 마음에 걸렸는지는 숫자를 들여다보면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2024년 말 베이징의 60세 이상 상주인구는 514만 명, 사상 처음 500만 선을 넘었습니다. 호적인구 기준으로는 31.1%가 60세를 넘었고, 80세 이상 초고령층만 68만 7천 명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서울은 65세 이상 인구가 177만 명, 비중 20.43%로 처음 20%선을 넘겼습니다. 전국 평균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서울시 추계는 2030년 24.5%, 2040년 31.9%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베이징이 이미 앞서 걷고 있는 길을, 서울은 이제 막 들어선 셈입니다.
같은 취재 주간, 저는 종로구에 사는 72세 김 여사도 하루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리 선생과는 정반대의 하루였습니다. 김 여사는 지하철 무임승차 카드를 들고 하루 평균 14km를 이동했습니다. 오전엔 탑골공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점심은 동대문의 1,000원 국밥집, 오후엔 동네 경로당에서 바둑을 두었습니다. “여기 앉아만 있으면 답답해요. 지하철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그게 낙이지.” 김 여사의 말이었습니다. 서울에는 이런 경로당이 3,329개소 있었지만, 의료와 복지가 한 자리에서 묶여 있는 베이징의 의양결합 구조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리 선생의 단지를 다시 찾은 날, 저는 위생서비스센터 한쪽 벽에 붙은 안내판을 유심히 봤습니다. 스마트밴드로 심박과 혈압을 자동 전송하는 ‘거택양로’ 시스템 사용법이 큼직한 글씨로 적혀 있었고, 담당 간호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글자를 못 읽는 어르신도 있어서 그림으로 다시 붙였어요.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옆에서 손잡아 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갑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제 책의 부제이기도 한 ‘디지털 실버’라는 말을 다시 곱씹게 되었습니다. 기술이 돌봄의 틀을 짜더라도, 그 틀을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의 손이었습니다.
제도의 결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2016년부터 상하이·베이징 등 일부 도시에서 장기간호보험(长期护理保险) 시범사업을 시작해 2024년 기준 49개 도시로 넓혔고, 한국은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전국 단위로 먼저 도입해 이미 16년째 운영 중입니다. 시작은 한국이 빨랐지만, 정작 지역 단위로 촘촘히 짜인 실행망은 베이징 쪽이 더 조밀해 보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도를 먼저 만든 나라가 반드시 더 나은 돌봄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관건은 그 제도가 한 사람의 하루 동선 안으로 얼마나 가까이 들어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두 하루를 나란히 놓고 나서야 저는 이 챕터를 쓴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리 선생은 좁게 움직이지만 깊게 돌봄을 받고, 김 여사는 넓게 움직이지만 얕게 돌봄을 받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베이징의 촘촘한 돌봄 뒤에는 고립의 위험이 잠복해 있었고, 서울의 자유로운 이동 뒤에는 OECD 최고 수준이라는 40%대 노인빈곤율이 그늘처럼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두 도시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절반의 답만 갖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이 균열은 정책 숫자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2025년 노인 무임승차로 3,832억 원의 손실을 냈습니다. 5년 전보다 77% 늘어난 액수입니다. 반면 베이징은 15차 5개년 계획(2026~2030) 진입과 함께 양로 예산을 커뮤니티 거점 쪽으로 계속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추 신 부연구원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이징은 돌봄을 단지 안으로 끌어오고, 서울은 이동의 자유로 활력을 지키려 한다. 두 모델이 서로를 보완할 때 진짜 설계가 완성된다.” 저는 이 말을 취재 수첩 맨 앞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 동네 경로당과 복지관을 걸어서 몇 분 안에 닿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의료와 돌봄이 실제로 이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리고 만약 부모님 댁에 스마트밴드 하나를 들고 찾아간다면, 그것을 대신 채워드릴 사람은 누구일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서울이 앞으로 20여 년 안에 밟게 될 길을 베이징은 이미 지나가고 있습니다. 리 선생의 ’15분 반경’과 김 여사의 ’14km 자유’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두 방식을 어떻게 우리 동네 안에서 함께 엮을지가 다음 세대의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7장 「베이징 vs 서울: 수도 노인생활」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리 선생과 김 여사의 하루를 더 촘촘히 따라가 보고 싶으신 분들, 그리고 두 수도의 통계와 제도를 표로 함께 살펴보고 싶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THE KOREAN TODAY × WIA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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