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상하이 와이탄의 화강암 난간 앞에 섰을 때 저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강바람을 맞으며 태극권을 하는 어르신들의 대열이 어찌나 정연한지, 마치 오래 손발을 맞춘 합창단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며칠 뒤 저는 부산 해운대 동백섬 둘레길을 걷는 노년 부부를 떠올렸습니다. 같은 시간, 다른 바다, 그러나 어딘가 닮은 걸음걸이. 이번 칼럼은 그 우연한 대구에서 시작됐습니다.
와이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제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젊은 시절 이 강가에서 외국 선박을 동경했는데, 이제는 그 배에 손주를 태워 보낸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저는 한동안 그 말을 곱씹었습니다. 강물을 오가는 배를 보며 자신의 청춘과 지금의 노년을 한 번에 겹쳐 보는 시선, 그것이 항구도시 노년이 갖는 독특한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가 늙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바다를 곁에 두고 늙어가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걸 그 순간 알았습니다.

취재를 위해 들여다본 숫자는 제 짐작보다 훨씬 컸습니다. 2024년 말 기준 상하이 호적 인구 중 60세 이상은 577만 6,200명, 전체의 37.6%에 달합니다. 80세 이상 초고령자도 86만 명, 5.6%나 됩니다. 특히 강 북안의 훙커우구는 45.2%, 황푸구는 44.0%로 사실상 두 명 중 한 명이 어르신인 동네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산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통계청 2025년 자료에 따르면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4.5%로, 전국 평균 20.3%를 크게 웃돌며 광역시 중 단연 1위입니다. 2021년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은 영도구·중구·동구 같은 원도심에서 30%를 넘는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 구조가 훙커우구와 신기하리만치 닮아 있었습니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제게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들이 원양어선 타고 브라질 갔다가 돌아와 결혼한 그날을 기억한다”며 웃으시는데, 그 웃음 안에는 오랜 기다림과 안도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상하이 어르신이 강 건너 상선을 보며 자신이 일으켜 세운 산업화를 떠올린다면, 부산 어르신은 태평양에서 들어오는 배를 보며 떠났다가 돌아온 자식들을 떠올립니다. 같은 바다이지만 두 도시의 어르신들이 그 바다에 새겨 넣은 이야기는 서로 다른 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두 만남을 나란히 놓고 싶었던 이유는,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하이는 부랑장 45km 산책로를 따라 ‘장자 운동 건강의 집’을 순차적으로 늘리며 강변 전체를 하나의 돌봄 벨트로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부산은 해운대·수영·남구·중구가 각기 다른 행정 주체로 나뉘어 있어, 같은 해안선을 두고도 통합된 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강 하나를 두고 한 도시가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힘과, 여러 구가 저마다의 속도로 노년을 돌보는 방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가 앞으로 두 도시 노년의 삶의 질을 가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더 넓게 보면 이 이야기는 두 나라가 동시에 마주한 고령화의 속도 문제이기도 합니다. 상하이는 2025년부터 3년간 기본양로서비스를 8대 분류 24개 항목으로 정비하며 치매 돌봄 베드 3천 개를 새로 짓겠다고 밝혔고, 부산은 어르신 디지털 배움터를 통해 원도심 노년층의 정보 격차를 메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두 도시 모두 산업화 시기 항구를 통해 경제를 일으켰던 세대가 이제 그 항구 곁에서 노년을 맞고 있다는 점에서, 이건 단순한 인구통계가 아니라 한 세대가 도시에 진 빚을 도시가 갚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취재 후반, 저는 와이탄에서 도보로 십 분 거리에 있는 노인대학 한 곳을 더 들렀습니다. 서예반 수업이 막 끝나가던 참이었는데, 팔순을 넘긴 한 할머니가 붓을 씻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떨려서 글씨가 삐뚤어져도 괜찮아, 여기 오는 게 중요한 거지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 말을 듣고 저는 노년의 배움이란 결과가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부산 동래구의 한 평생학습관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봤습니다.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는 반이었는데, 한 어르신이 옆자리 친구에게 “영상통화 버튼이 여기 있었네, 이제 손주 얼굴 매일 볼 수 있겠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두고 보니, 저는 노년의 배움이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사회 안전망의 한 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은 2024년 기준 도시·농촌 주민 기본양로보험 가입자가 10억 명을 넘어섰고, 노인대학 재학생 수도 전국적으로 2천만 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한국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2천2백만 명을 넘었지만, 실제 수급액이 생활비에 못 미쳐 65세 이상 고용률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37%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통계를 접했을 때 저는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중국 어르신들이 배움터로 향하는 발걸음과, 한국 어르신들이 다시 일터로 향하는 발걸음이 같은 시기 다른 이유로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노후인지 제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두 나라 모두 노년을 ‘멈춘 시간’이 아니라 ‘계속되는 시간’으로 다시 쓰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글을 정리하며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해안선과 강변에서, 얼마나 자주 그곳에 기대어 사는 어르신들의 걸음을 눈여겨봤을까요. 독자 여러분의 동네에도 분명 바다나 강, 혹은 오래된 골목이 있을 겁니다. 그 풍경 속에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어르신을 한 번쯤 눈여겨봐 주시길, 그리고 가능하다면 짧은 인사 한마디라도 건네보시길 조심스레 제안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8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상하이 부랑장의 강변 돌봄 벨트와 부산 해안선의 원도심 재생이 어떻게 서로 다른 해법을 찾아가는지, 통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 상세 정보는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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