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노트를 정리하다가 자꾸 손이 멈추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하얼빈의 겨울은 집 안이 24℃고 바깥이 -30℃입니다. 문 하나로 30도의 온도차를 넘나들다 보면 혈압이 널뛰죠.” 하얼빈 도리구의 양로상담사 왕리화 선생님이 저에게 담담하게 건넨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제가 자란 강원도 산골 마을의 겨울과 하얼빈의 겨울이 숫자로는 10도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도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영하 30도의 도시와 영하 20도의 산골, 두 한랭지역 노인들의 겨울살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왕리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도리구의 작은 상담센터였습니다. 그는 창밖으로 얼어붙은 송화강을 가리키며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노인은 무조건 남쪽으로 갑니다. 몸을 위한 이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이주예요”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상담실 벽에 붙은 상담일지를 넘겨보니, 겨울마다 반복되는 상담 내용의 대부분이 ‘혈압’, ‘낙상’, ‘외로움’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후조이양(候鸟养老)’이라는, 철새처럼 겨울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이 낯선 단어가 왜 그토록 많은 하얼빈 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숫자로 짚어보면 두 지역의 처지가 더 선명해집니다. 2025년 하얼빈 상주인구 985.8만 명 중 60세 이상은 274.8만 명, 27.9%에 이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고령화율은 25.7%로 전국 3위이고, 횡성은 36.5%, 영월은 35.6%, 양양은 35.1%까지 올라가 있습니다. 하얼빈의 1월 평균 최저기온은 -24℃, 강원 산간은 -15℃ 안팎이니 겉으로는 하얼빈이 훨씬 혹독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취재를 하면서 오히려 강원도 노인들이 느끼는 추위의 ‘체감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얼빈은 10월 20일부터 이듬해 4월 20일까지 6개월간 도시 중앙난방이 24시간 자동으로 들어와 실내가 22~26℃로 유지되는 반면, 강원도 산간의 어르신들은 도시가스나 등유 보일러 요금이 부담스러워 난방을 아예 꺼두는, 이른바 ‘냉방노인’이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저에게 “보일러 기름값 아까워서 낮에는 이불 뒤집어쓰고 있다가, 해 지면 그냥 자버려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과 왕리화 선생님의 말을 나란히 놓고 보면, 두 지역이 추위를 견디는 방식이 정반대라는 것이 보입니다. 하얼빈은 ‘이동’으로 겨울을 피합니다. 헤이룽장성이 밝힌 ‘룽장 피서·피한 관광의료’ 통계에 따르면 연간 50만 명의 동북 노인이 하이난 싼야, 윈난 시솽반나 같은 곳으로 2~6개월씩 내려가 지냅니다. 반면 강원도는 ‘정주’를 택합니다. 태백·영월·정선의 어르신들은 평생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분들이 많고, 대신 2025년부터 확대된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과 ‘사랑 ON 난방비 지원'(일반 가구 최대 59만 2천 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두 나라가 노년의 겨울을 서로 다른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얼빈이 “추위로부터 도망치라”고 말한다면, 강원도는 “추위 속에 머물되 이웃과 함께 견디라”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쉽게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얼빈의 후조이양은 중산층 이상 노인에게만 열린 선택지이고, 강원도의 정주형 돌봄도 방문 인력이 닿지 못하는 산간 독거노인에게는 여전히 허술한 틈이 있으니까요. 다만 두 방식 모두, 노인이 혼자 추위와 싸우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저마다의 안간힘이라는 점만은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세대와 정책의 큰 흐름 속에 놓아보면 조금 더 무거워집니다. 하얼빈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상주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도시이고, 동북 3성 전체가 중국에서 가장 깊은 고령화 단계에 들어서 있습니다. 강원도 역시 지방소멸 위험지역으로 자주 거론되는 곳입니다. 두 지역 모두 젊은 인구는 도시로 떠나고, 남은 어르신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버티는 구조인 셈입니다. 헤이룽장성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추진해온 ‘양로·영유아 서비스 발전 특별행동방안’과, 한국 정부가 2025년부터 전국 35개 지자체로 확대한 통합돌봄 시범사업이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드는 것도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나라 모두 ‘고령화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답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지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동네의,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겨울은 정말 안전한가.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 들고 보일러 온도를 1도 낮추는 그 소심한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가. 독자 여러분께도 묻고 싶습니다. 올겨울, 가까운 곳에 혼자 겨울을 나야 하는 어르신은 없으신가요. 안부 전화 한 통, 경로당 나들이 한 번이 하얼빈의 중앙난방만큼이나 든든한 온기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얼빈의 노인이 남쪽 바닷가에서 아침을 맞고, 강원도의 독거노인이 이웃의 방문을 기다리는 이 겨울의 두 풍경은,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존엄하게 겨울을 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앞으로도 계속 현장에서 찾아 나가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2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하얼빈과 강원도의 난방비 구조, 후조이양의 실제 비용, 그리고 한국 기업이 참고할 만한 한랭지 실버 산업의 흐름까지 궁금하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THE KOREAN TODAY × WIA CODE
이 기사의 WIA Code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사실과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기본 카메라로 찍으면 스캐너 안내 페이지가 열립니다 — 기사 바로 열기
움직이는 코드(스트림) 한 장에 기사 전문(사진 포함)이 담겨 있습니다 — WIA Code 스캐너로 약 30초 비추면 폰에 저장되어 인터넷 없이도 읽을 수 있습니다. Stream.mp4 도 여기서 받습니다.
WIA Code · 코리안투데이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