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서울 은평구의 한 방문요양센터에서 요양보호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아침 8시부터 하루 세 집을 돌며 목욕과 식사를 돕고, 오후에는 인지지원등급을 받은 어르신 댁에 들러 화투 놀이를 함께 했습니다. “이 어르신은 아직 거동에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혼자 두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를 안 하세요.” 그 한마디가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장기요양보험이라는 제도는 결국 숫자가 아니라,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루를 어떻게 채우느냐의 문제라는 것을요.

제 책 「함께 늙어가는 법」 2장을 쓰면서 저는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4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연보』를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등급별 분포를 보면 가장 중증인 1등급은 5만 5천 명, 4.8%에 불과합니다. 반면 비교적 경증인 4등급이 53만 6천 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합니다. 챕터에 쓴 그대로, “한국의 장기요양보험은 10년에 걸쳐 경증 치매와 인지지원등급까지 포괄한 ‘포용의 제도’가 되었다”는 문장이 제게는 그 요양보호사의 하루와 정확히 겹쳐 보였습니다. 제도가 중증자 구조에서 그치지 않고, 아직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노인의 외로움까지 붙잡으려 한다는 뜻이니까요.
숫자만 놓고 보면 규모의 차이는 뚜렷합니다. 2024년 한국의 장기요양 인정자는 116만 5천 명, 급여비 지출은 16조 1,762억 원으로 전년보다 11.6% 늘었습니다. 2020년 85만 8천 명이던 수급자가 4년 만에 35% 넘게 불어난 셈이니,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곡선입니다. 중국은 2016년 15개 도시 시범에서 2025년 92개 지역, 가입자 1억 8천만 명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다만 실제 급여를 받는 이는 260만 명, 그것도 대부분 중증 거동불능 노인입니다. 60세 이상 인구가 3억 2,300만 명, 거동불능·치매 노인이 4,500만 명에 이르는 나라에서 260만 명이라는 숫자는, 제 책에 쓴 표현대로 아직 “찻숟가락”에 가깝습니다.
제가 상하이에서 만난 한 사회복지사는 이 격차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줬습니다. “우리는 지금 물에 빠진 사람부터 건지고 있어요. 한국처럼 물가에서 넘어질 뻔한 사람까지 챙길 여력은 아직 없습니다.” 실제로 중국 49개 주요 시범도시 가운데 28곳은 중증 거동불능만을 대상으로 하고, 상하이·쑤저우·지난·쯔보 등 4개 도시만 중등도·경도까지 커버합니다. 본인부담도 도시마다 제각각이어서, 상하이는 재가 10%인데 쑤저우는 서비스 유형에 따라 5%에서 30%까지 벌어집니다. 한국은 재가 15%, 시설 20%로 전국이 동일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순서로 숙제를 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깊이를 먼저, 중국은 넓이를 먼저 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완벽한 제도일까요. 취재를 마치고 저는 오히려 그 질문 자체를 내려놓게 됐습니다. 한국은 17년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급여비가 매년 두 자릿수에 가깝게 늘고, 보험료율도 2026년이면 건강보험료의 13.14%까지 올라갑니다. 요양보호사 인력 부족과 시설 품질 편차, 그리고 여전히 가족의 어깨에 남아 있는 돌봄노동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규모는 커졌지만 경증 커버율과 도농 격차, 재원 다각화라는 근본 과제를 2028년 전국화 전까지 풀어야 합니다. 완벽한 제도가 아니라, 저마다 다른 지점에서 미완성인 제도 두 개를 저는 목격한 셈입니다.
이 흐름을 세대와 정책의 맥락에서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인지지원등급이라는 세분화된 단계를 만들 만큼 노년의 삶을 촘촘히 들여다볼 여유를 가진 사회입니다. 중국은 3억 명이 넘는 고령 인구를 상대로 10년 만에 제도의 뼈대를 세운, 속도전을 치른 사회입니다. 2025년 3월 국무원이 보험료율을 0.3%로 통일하고 기업·개인·정부 3자 분담 구조로 가겠다고 밝힌 것도, 사실은 한국 모델을 상당 부분 참고한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서로 다른 속도로 걷던 두 나라가, 결국 비슷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챕터를 쓰며 독자들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가 부모님, 혹은 우리 자신의 노후를 맡길 제도를 고를 때, 기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담느냐’여야 할까요, 아니면 ‘얼마나 세심하게 담느냐’여야 할까요. 정답은 없을지 몰라도, 이 질문을 먼저 던진 나라가 다음 10년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교차로마다, 등급판정 노하우와 인지지원 모델, AI 돌봄로봇 같은 한국 실버산업이 참여할 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도 함께 적어 두고 싶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2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통계와 인터뷰의 세부는 지면보다 책에서 훨씬 촘촘하게 다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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