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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미희

향으로 계절을 맞이하는 법

달력보다 먼저, 코끝으로 알아차리는 계절의 문턱에서

기사입력 기사번호 57738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 제 15회

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돌봄의 하루는 계절을 잊게 합니다. 아침에 약을 챙기고, 식사를 살피고, 병원 예약을 확인하다 보면 창밖의 나무가 언제 잎을 바꿨는지, 바람의 결이 언제 달라졌는지 모른 채 몇 달이 흘러가곤 하지요. 오늘은 그렇게 계절을 놓치고 사는 이들에게, 아주 작은 향 하나로 다시 계절 앞에 서 보자는 이야기를 건네려 합니다.

계절을 잊고 사는 사람들

누군가를 돌보는 삶은 시간의 단위가 달라집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다음 약 시간’, ‘다음 진료일’, ‘다음 목욕 날’로 하루가 쪼개지지요. 계절은 그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고, 우리는 문득 옷장을 열다가 이미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그럴 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만큼 온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쏟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어느 날 창문을 열었다가 공기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은 저 없이도 다음 계절로 넘어가 있었고, 저만 같은 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그 낯선 감각은 서운함과 닮아 있었습니다. 내 계절은 누가 챙겨 주나,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계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몸으로 한 번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확인을 가장 빠르고 조용하게 해 주는 감각이 바로 후각이었습니다. 눈은 피곤하고 귀는 소음에 지쳐 있어도, 코는 여전히 계절의 냄새를 알아챕니다.

향이 먼저 계절을 데려옵니다

향은 기억과 가까운 감각이라고들 합니다.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오래전 장면이 통째로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어릴 적 마당에 피던 꽃, 장마 뒤 흙에서 올라오던 냄새, 겨울 아침 부엌에서 나던 온기 어린 냄새 같은 것들입니다. 계절마다 우리 몸에는 이런 향의 기억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돌봄의 일상에서도 이 향의 기억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옵니다. 부모님 이불을 널다가 햇볕 냄새를 맡는 순간, 병원 복도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누군가 들고 지나가는 과일 향이 스칠 때, 잠깐이지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다녀오지요. 그 짧은 외출이 사실은 우리를 지탱해 주는 작은 숨구멍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오일병 하나를 바꾸어 둡니다. 지금 이 계절에 어울린다고 느끼는 향, 혹은 그저 오늘 내 마음이 끌리는 향이면 충분합니다. 어떤 향이 어느 계절의 것이라는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는 작은 선언을 향으로 하는 일입니다.

창턱 위의 작은 의식

제가 권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창턱이나 식탁 한쪽처럼 하루에 몇 번은 눈이 가는 자리에, 지금 계절의 꽃 한 송이나 잎 하나를 두고 그 옆에 오일병을 나란히 놓는 것입니다. 꽃은 시장에서 산 것이어도, 산책길에 주운 나뭇잎이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리는 ‘나를 위한 자리’이고, 하루 중 잠시 멈추는 표시가 됩니다.

아침에 커튼을 걷으며 그 앞에 서서 오일병 뚜껑을 열고 천천히 한 번 숨을 들이쉽니다. 빛이 스며드는 창턱에서 향을 맡는 몇 초는 하루의 시작을 조금 다르게 만들어 줍니다. 바쁘게 뛰어들기 전, ‘오늘도 계절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지요. 저녁에 다시 그 앞에 서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든 아침의 나와 이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돌봄을 받는 분과 함께해도 좋습니다. 꽃을 함께 고르고, 향을 맡으며 ‘이 냄새 어디서 맡아 본 것 같아요?’ 하고 묻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기억을 함께 떠올리는 시간이 됩니다. 정답을 맞히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기억을 꺼내어 나누는 일입니다. 그렇게 창턱 위의 작은 의식은 두 사람의 계절을 함께 열어 줍니다.

내 몸의 계절도 바뀝니다

계절이 바뀌면 돌보는 이의 몸도 달라집니다. 어떤 때는 공기가 건조해 손이 갈라지고, 어떤 때는 습해서 마음까지 눅눅해지지요. 우리는 부모님의 이불과 옷을 계절에 맞게 바꾸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향을 맞이하는 일은 그 질문을 대신 던져 주는 역할을 합니다.

향을 고를 때 ‘지금 내 몸은 어떤가’ 하고 잠깐 살펴보세요. 무거운 하루였다면 가볍게 트이는 느낌의 향에, 마음이 붕 떠 있는 날이면 낮고 차분하게 가라앉는 향에 손이 갑니다. 정해진 처방이 아니라, 오늘 내가 끌리는 쪽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선택 자체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는 연습이 됩니다.

저는 손을 씻고 난 뒤 오일을 섞은 크림을 손등에 바르면서 향을 맡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돌봄으로 거칠어진 손을 편안하게 어루만지는 일과 계절을 맞이하는 일이 한 동작에 담기지요. 하루에 몇 번, 손을 씻을 때마다 이 짧은 순간이 돌아옵니다. 그것만으로도 ‘나도 돌봄을 받고 있다’는 감각이 조금씩 몸에 스밉니다.

계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나를 맞이하는 일

계절을 맞이하는 일은 결국 흘러가는 시간 안에 나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돌봄의 나날은 같은 하루의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향으로 계절을 표시해 두면 그 반복에도 마디가 생깁니다. ‘그때는 이 향을 두었지’, ‘그 계절엔 이 꽃이 창턱에 있었지’ 하는 기억은 나중에 그 시간을 돌아볼 때 따뜻한 이정표가 되어 줍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이런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돌봄이 끝난 뒤에도 그 계절의 향을 맡으면, 힘들었던 기억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었던 작은 아침들, 창턱의 빛, 함께 맡았던 냄새가 함께 떠오릅니다. 향은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조금 더 다정하게 기억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오늘 창밖을 한 번 바라보세요. 지금은 어느 계절인가요. 그리고 그 계절에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향이 있다면, 작은 병 하나를 창가에 두어 보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계절은 이미 당신 곁에 와 있고, 당신은 그 계절을 맞이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창가나 식탁에 서서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코로 천천히 세 번 들이마셔 보세요. 눈을 감고 ‘지금은 어떤 냄새가 나는가’ 하고 속으로 말해 봅니다. 도구가 필요 없고, 서 있기 힘들면 앉은 채로도 됩니다. 계절의 공기를 의식적으로 맡는 것만으로도 ‘지금 여기’로 마음이 돌아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지금 계절의 꽃 한 송이나 나뭇잎 하나를 구해 물컵에 꽂고, 그 옆에 평소 좋아하는 향의 오일병이나 향낭을 나란히 놓습니다. 아침에 커튼을 걷을 때, 저녁에 불을 켤 때 그 앞에 서서 뚜껑을 열고 한 번 깊게 숨을 쉬세요. 하루에 두 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향을 맡는 것이 흐트러진 하루에 마디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여유가 될 때: 돌보는 분과 함께 창가에 앉아, 준비한 꽃과 향을 번갈아 맡으며 ‘이 냄새 맡으면 뭐가 떠올라요?’ 하고 물어보세요. 답이 없어도, 엉뚱한 답이어도 괜찮습니다. 이어서 무향 크림 한 번 덜어 서로의 손등에 천천히 발라 주며 손을 어루만져 봅니다. 함께 기억을 떠올리고 손을 맞대는 시간이 두 사람 모두에게 따뜻한 자기돌봄이 될 수 있어요.

살며시 당부
아로마 오일은 의약품이 아니며, 향은 기분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뿐 질병을 다스리는 수단이 아닙니다. 원액을 피부에 직접 바르지 말고, 호흡기가 예민하거나 임신 중이거나 지병이 있는 분은 향의 양을 아주 적게 하고 몸의 반응을 먼저 살펴 주세요.
계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일은 각자의 몫입니다. 돌봄으로 바쁜 나날에도 창턱 위 작은 향 하나로 계절의 문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에 떠밀려 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맞이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 당신의 창가에도 빛과 향이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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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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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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