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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수진

[실버 브릿지] 제5권 · 제28장 · 100번째 칼럼 앞에서, 노년의 행복이 왜 가장 낮은지 물었습니다

기사입력 기사번호 59156

100번째 칼럼의 첫 문장을 쓰기 전, 저는 한참 동안 빈 화면만 바라보았습니다. 2024년 3월에 첫 글을 올린 뒤 99편을 쌓았는데, 막상 백 번째 앞에 서니 무엇을 써야 할지 오히려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오래 묵혀 둔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노년’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은 그 질문 앞에서 제가 적어 본 답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2년 가까이 한국과 중국의 노년 현장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서울의 복지관 식당에서 마주 앉은 어르신도 계셨고, 중국 사회구(社区) 광장에서 저녁마다 춤을 추시던 분들도 계셨습니다. 나라도 말씨도 달랐지만, 어느 자리에서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몸은 아직 움직이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이야기, 일하고 싶지만 불러 주는 데가 없다는 이야기, 자식은 바쁘고 말 상대는 줄어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숫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1,051만 명, 전체의 20.3%를 넘기며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습니다. 같은 해 중국은 60세 이상이 3억 2,300만 명, 인구의 23%에 이릅니다. 전 세계 노인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중국에 산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실버경제는 2023년 기준 7조 1,000억 위안, GDP의 6% 규모이고, 관련 등록 기업만 50만 2,000개에 달합니다. 2035년에는 30조 위안까지 커질 거라는 추산도 있습니다. 시장은 해마다 13%쯤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오래 남은 숫자는 크기가 아니라 낮은 쪽에 있었습니다. 한국 노년층의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만족한다’는 응답이 29.9%, ‘불만족’은 19.4%였습니다. 아동·청소년 56.6%, 청년 41.8%, 중장년 38.0%보다 모두 낮은 수치입니다. 보통 은퇴 이후의 삶은 한숨 돌리는 시기라고 여기는데, 한국의 그래프는 반대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연금이 모자라 55~79세의 55.8%가 73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며 우리가 복지국가의 제도는 다 들여오지 못하고 개인주의만 먼저 들여온 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본 풍경은 결이 달랐습니다. 2024년 1월 국무원 판공청이 ‘실버경제’라는 말을 정부 공식 문서에 처음 올렸고, 2025년에는 31개 성 가운데 24곳이 지방정부 업무보고에 이를 담았습니다. 국가가 판을 깔고, 시장이 움직이고, 가족이 뒤를 받치는 구조입니다. 자녀의 부양 의무는 민법에 적혀 있고, 그 곁에서 노인대학과 광장무, 공동 식당이 노인들의 하루를 채웁니다. 물론 중국이라고 외로움이 없을 리 없고 빠르게 판을 짜는 방식에는 그늘도 있을 겁니다. 다만 한국에서 ‘관계의 붕괴’를 말하던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중국의 사회구 광장이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이 두 풍경을 나란히 놓고 저는 세 개의 기둥을 세워 보았습니다. 첫째는 몸의 자립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건강한 것이 목표여야 하고, 요양시설 중심이 아니라 살던 집과 동네에서 움직이며 늙는 ‘재가 액티브 에이징’이 동양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마음의 연결입니다. 혈연의 효(小孝)와 사회의 효(大孝)를 겹으로 두르는 일입니다. 셋째는 삶의 의미입니다. 일하고, 배우고, 돌보고, 기여하는 일이 칠십 대까지 물처럼 이어지는 ‘평생현역’의 길입니다. 73세까지 일하고 싶다는 55.8%를 저는 비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읽었습니다.

이 세 기둥이 왜 중요했는지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노년의 불행이 돈 문제로만 보이던 자리에서, 사실은 몸과 관계와 쓸모가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금을 올려도 말 걸어 줄 사람이 없으면 하루는 길고, 건강해도 갈 곳이 없으면 집이 좁아집니다. 한 기둥만 세워서는 지붕이 얹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효’라는 한 글자로 설명해 오던 것을 이제는 건강·관계·의미라는 세 갈래로 풀어 다시 세워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사회 흐름을 놓고 보면 한국은 2050년 노인 인구가 40%, 2072년에는 48%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 앞에 있습니다. 한국은 가장 빠르게 늙고, 중국은 가장 많이 늙습니다. 두 나라의 경험은 앞으로 같은 길을 걸을 동남아와 중동, 남미에도 그대로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정도 함께 적어 두었습니다. ‘옛날이 좋았다’며 대가족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은 1인 가구와 저출산의 현실과 부딪힙니다. 정부 주도의 속도를 그대로 따라가면 한국 사회의 다양성과 민간의 힘을 누를 수 있습니다. 스웨덴식 복지를 우리 재정과 인구 구조를 떼어놓고 들여오는 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효는 옛 구조를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새로 설계하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함께 생각해 보자고 청하고 싶습니다. 부모님의 남은 시간을 떠올릴 때, 우리는 무엇부터 헤아리고 계신가요. 병원비와 연금 같은 숫자가 먼저입니까, 아니면 오늘 그분이 누구와 말을 나누었는지가 먼저입니까. 그리고 이십 년 뒤의 나는 어떤 동네에서, 어떤 일을 하며, 누구와 밥을 먹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해 보는 일이 노년 준비의 첫걸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은 현실의 반대말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게 하는 북극성이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1회 때 저는 한국과 중국이 같은 강의 양쪽 둑에 서서 같은 고민을 한다고 썼습니다. 백 번째 칼럼에 이르러 그 문장을 이렇게 고쳐 씁니다. 우리는 이제 같이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28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통계 비교표와 동양형 노년의 실행 전략까지 그곳에 적어 두었으니 필요하신 분은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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