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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14:39:46 KST 전체기사 로그인 회원가입 한국어 ENG 中文 日本語 Tiếng Việt

칼럼 김미희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미리 안다고 덜 아픈 건 아니지만

다가오는 작별 앞에서, 남은 날들을 품고 나를 잃지 않는 법

기사입력 기사번호 61280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 제 30회

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부모님 곁을 지키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 시간이 언제까지나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몸으로 먼저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창가에 개어 둔 담요, 꽃병에서 조용히 말라 가는 꽃 한 송이를 보다가 이유 없이 목이 메는 오후도 있지요. 오늘은 그런 마음을 서둘러 달래기보다, 잠시 곁에 앉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아직 곁에 계신데, 벌써 그리운 마음

돌봄의 시간이 길어지면 이별보다 슬픔이 먼저 찾아오곤 합니다. 부모님은 아직 곁에서 숨 쉬고 계신데 마음은 벌써 그 빈자리를 그리워하지요. 이상한 일도, 불효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 모른다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은 그 충격을 조금씩 나누어 받으려고 미리 슬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이 슬픔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마음이 준비하려는 자연스러운 몸짓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이 슬픔은 아주 평범한 순간에 불쑥 찾아옵니다. 숟가락을 드는 손이 전보다 느려진 걸 볼 때, 예전에는 한 공기를 다 비우시던 분이 몇 술 뜨고 내려놓으실 때 그렇습니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방문 앞에서 부모님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 본 적이 있는 분도 계실 겁니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 설거지를 하다 혼자 눈물이 차오르기도 하지요. 저 역시 부모님을 돌보던 시절, 그 이유를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한 채 부엌에 오래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해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 내가 슬픈 건 당연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보라는 것입니다. 슬픔을 밀어내려 애쓰면 마음은 더 단단히 굳어 버립니다. ‘아, 내가 지금 미리 아파하고 있구나’ 하고 이름을 붙여 주기만 해도, 정체를 모르던 무거움이 조금은 내 것이 됩니다. 울고 싶은 날은 울고, 괜찮은 날은 괜찮은 대로 지내도 됩니다. 슬픔과 일상이 함께 있어도 괜찮습니다.

‘준비’라는 말의 진짜 뜻

이별을 준비한다고 하면 많은 분이 해야 할 일의 목록부터 떠올립니다. 연락해야 할 사람, 정리해야 할 물건, 가족끼리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 줄줄이 생각나지요. 물론 그런 준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준비의 진짜 뜻은 완벽한 이별을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함께 보낼지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더 깊은 의미의 준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형제자매끼리 모이면 이야기는 자꾸 실무로 흐릅니다. 누가 언제 들를지, 무엇을 어떻게 할지 정하다 보면 서로 서운한 말이 오가기도 하지요. 정작 부모님께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에, 더 좋은 때에’ 하며 미뤄 두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부모님이 깊이 잠든 얼굴을 보며, 그 말을 아직 꺼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래서 종이 한 장을 반으로 접어 보시길 권합니다. 한쪽에는 ‘해야 할 일’을, 다른 쪽에는 ‘하고 싶은 말과 함께하고 싶은 시간’을 적어 보는 겁니다. 해야 할 일은 가족과 나누어 맡을 수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나만 할 수 있습니다. 두 칸을 나란히 두고 보면 무엇을 조금 미뤄도 되고 무엇을 미루지 말아야 할지가 조금씩 보입니다. 다 적지 못해도, 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적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어요.

남은 날을 ‘오늘’이라는 단위로

얼마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은 마음을 자꾸 먼 앞날로 데려갑니다. 그런데 앞날을 셈하는 동안 정작 지금 눈앞의 하루는 흐릿하게 지나가 버리지요. 시간을 크게 셈하면 두렵지만, 오늘 하루로 쪼개어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보입니다. 큰 이별 앞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건 결국 오늘 한 번의 눈맞춤, 오늘 한 번의 손잡음입니다.

거창한 추억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옛 노래를 작게 틀어 두고 함께 흥얼거리는 시간,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며 ‘이때 기억나세요?’ 하고 묻는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기억이 또렷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함께 기억을 떠올리려는 그 시간 자체가 서로에게 따뜻한 자리가 되어 줍니다. 말씀이 줄어드셨다면, 따뜻한 손으로 손등을 천천히 쓸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여기 있어요’라는 마음이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세 마디를 조금씩 건네 보세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한꺼번에 하지 않아도 되고, 소리 내어 말하기 쑥스럽다면 손을 잡은 채 마음속으로 전해도 됩니다. 부모님이 다 알아듣지 못하실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은 부모님께 건네는 것이기도 하지만, 훗날의 나를 위해 남겨 두는 말이기도 합니다.

돌보는 나도 무너지지 않도록

이별을 앞둔 돌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칩니다. 늘 긴장한 채로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고, 잠을 자도 깊이 잠들지 못하지요. 그 와중에 가장 괴로운 건 죄책감입니다. 너무 지친 어느 밤 ‘이 시간이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미워 더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사랑이 부족해서 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버틴 몸과 마음이 ‘나도 좀 쉬고 싶다’고 보내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돌봄과 지침, 사랑과 피로는 한 사람 안에 얼마든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나는 오늘도 곁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그래서 하루 중 아주 짧게라도 나만의 쉼표를 두시길 바랍니다. 창가에 앉아 바깥 빛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내쉬는 몇 분, 좋아하는 향을 손수건에 한 방울 떨어뜨려 천천히 맡아 보는 시간처럼요. 향은 마음을 다독이며 지금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는 작은 자기돌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곁에 두세요. 해결책을 주지 않아도, 그저 ‘힘들었겠다’ 하고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질 때가 있습니다.

덜 아프지는 않아도, 마음에 자리가 생긴다

미리 안다고 이별이 덜 아픈 건 아닙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말만큼은 솔직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도 그날의 슬픔은 고스란히 찾아오고, 한동안 우리를 흔들어 놓을 겁니다. 준비가 슬픔을 없애 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미리 알고 함께 보낸 시간은 마음 안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줍니다. 그때 잡아 드린 손의 온기, 함께 흥얼거린 노래, 창가에 나란히 앉아 있던 조용한 오후가 그 자리에 차곡차곡 쌓이지요. 훗날 슬픔이 밀려올 때 그 기억들이 슬픔을 없애 주지는 못해도, 슬픔 곁에 함께 머물러 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잘 준비하고 있는지 따지기보다, 오늘도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작별은 없습니다. 서툴러도 마음을 다해 함께한 날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창가 숨 고르기 — ① 창가나 빛이 드는 곳에 의자를 두고 등을 기대어 편히 앉습니다. ②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어깨에 들어간 힘을 아래로 툭 내려놓습니다. ③ 코로 천천히 ‘하나, 둘, 셋, 넷’ 세며 숨을 들이마십니다. ④ 입으로 ‘하나부터 여섯’까지 세며 길게 내쉽니다. ⑤ 이렇게 다섯 번 하고, 마지막에 한 손을 가슴에 얹어 ‘오늘도 애썼다’고 속으로 말해 줍니다.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하면 몸의 긴장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손등 쓸어 드리기 — ① 부모님 곁에 앉아 내 두 손을 비벼 따뜻하게 데웁니다. ② 부모님 손을 내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습니다. ③ 다른 손으로 손목에서 손끝 쪽으로, 손등을 아주 천천히 다섯 번 쓸어 드립니다. ④ 손가락을 하나씩 살짝 감싸 쥐었다 놓아 드립니다. ⑤ 마치면서 ‘고마워요’ 한마디를 건네거나, 말없이 잠시 손을 잡고 있습니다. 말이 줄어든 시기에도 손의 온기는 서로의 곁에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다정한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여유가 될 때] 마음 편지 한 장 — ① 조용한 시간에 작은 공책과 펜을 준비합니다. ② 맨 위에 부모님을 부르던 호칭을 적습니다. ③ 그 아래에 ‘고마웠던 일’ 세 가지를 짧게 적습니다. ④ 이어서 ‘아직 하지 못한 말’ 한 가지를 적습니다. ⑤ 전해 드릴 수 있다면 읽어 드리고, 그러기 어렵다면 공책을 덮고 잘 간직해 둡니다. 마음속에 맴돌던 말을 글로 옮기면 생각이 정리되고, 훗날 그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기록이 될 수 있어요.

살며시 당부
향은 컨디션에 따라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니 피부에 직접 바르지 말고 손수건에 아주 연하게만 사용하시고, 부모님이 불편해하시면 바로 치워 주세요. 슬픔과 지침이 오래 마음을 짓누른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전문가와 꼭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창가의 담요는 오늘도 누군가의 무릎을 덮어 주기 위해 그 자리에 놓여 있고, 마른 꽃은 시들었어도 여전히 한때의 향을 품고 있습니다. 이별을 앞둔 우리 마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프지만, 그 아픔 안에는 오래 사랑해 온 시간이 함께 담겨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도 곁을 지킨 당신의 손이 따뜻했기를, 그리고 그 손을 잠시 당신 자신의 가슴에도 얹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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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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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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